생각의 편린들

대학 사찰 및 경찰 투입 논란 통해 얻는 교훈

새 날 2015. 3. 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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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를 맞이한 대학가가 학내 경찰 투입과 학원 사찰 의혹으로 어수선합니다.  지난달 4일 서강대에서 마리오아울렛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학생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기동대가 교내로 진입한 일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월 11일엔 구로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성공회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을 사찰한 사건이 벌어졌고, 총장과 면담을 요구하던 청주대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이에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대학생 20여명은 9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내사찰 및 진압경찰 투입에 대해 경찰청장의 책임 있는 사과와 대학생 사찰 내역 공개를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온오프라인을 통해 받은 전국 121개 대학 소속 학생 및 교직원 1300여명의 서명이 담긴 항의서한을 경찰청 민원실에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경찰의 캠퍼스 진입은 지난 1999년 이후 16년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이래 '학문의 전당' 대학은 일종의 성역화가 된 채 경찰의 캠퍼스 진입이 철저히 금기시되어 왔던 터입니다.  이는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과 뒤이어 등장한 전두환 군사정권이 대학 캠퍼스 내에서 마음껏 저질러왔던 온갖 만행과 폭압에 대한 반대급부적 성격이 짙은 데다, 6.10 민주화항쟁 당시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피땀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기사를 접하면서 학내에 경찰이 투입되거나 사찰 논란을 빚은 자체도 어이없게 다가오지만, 그보다 더욱 저를 놀라게 한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학생들의 반응입니다.  항의서한을 만들기 위해 전국 121개 대학 소속 학생 및 교직원들로부터 받은 서명수가 고작 1300여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결국 한 학교당 고작 10명 정도가 이번 서명에 동참한 꼴이 됩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뉴시스

 

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 신학기라 총학생회가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탓일까요?  아무리 그래도 학교당 10명은 너무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서명을 일일이 받지 않은 채 대표 한 명만으로 학교 수를 채웠을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요즘은 학생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바쁠 테니 서명 받기가 녹록지 않을 수 있겠거니와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의 수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은 숫자라면 이를 받아든 경찰이 오히려 당황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21개라는 대학 숫자에 비해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서명수를 보면서 코웃음을 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대학생들 요즘 너무 바쁩니다.  비싼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뛰어야지, 바늘구멍이라 불리는 취업 준비 해야지, 캠퍼스의 낭만 따위를 즐길 여력이 과연 존재할까 싶을 만큼 정신없기만 한 요즘 학생들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충분치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납득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그러나 학내에 공권력이 침투해 들어오거나 암암리에 사찰이 이뤄져도 왠지 대다수 학생들로부터는 무감각해 보이는 느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항의서한 서명숫자가 이를 극명하게 입증하는 셈입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애써 모른 척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어느덧 경찰 기동대마저 캠퍼스에 투입되어 공권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유신정권이나 군사정권 당시에나 볼 수 있었던 씁쓸한 광경입니다.  국가가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어야 지극히 마땅한 사회입니다만, 아시다시피 작금의 분위기는 외려 7,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30년전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몸바쳐 이뤄낸 성과를, 취업 때문에, 혹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또는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몰라라 방치하고 있는 사이 공기나 물의 존재처럼 특별히 소중함을 느끼지 못해왔던 당연한 권리마저 이젠 그 영역을 야금야금 탈취 당하고 있는 와중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지 않을 경우 이를 보호해줄 이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모두가 불의 앞에선 정작 눈을 감고, 작은 불이익에만 핏발 세우는 작금의 세태 앞에선 결국 손에 쥐어준 작은 빵마저 지키지 못한 채 야금야금 빼앗기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강하게 일깨우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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