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수학 포기, 비단 연산 때문만은 아니다

새 날 2015. 3. 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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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모 외국인학교에서 초등 과정을 배우고 있는 한 아이를 알고 있다.  이 아이는 줄곧 상하이에서 상주하다 여름방학이 되면 국내에 들어오곤 하는데, 어느 날엔가 내게 푸념을 한 가득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학교에선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활용할 수 있는데 반해 국내에선 그렇게 할 수 없다 보니 자신의 수학 실력이 한국 아이들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획기적인 소식 하나를 전해 듣게 됐다.  15일 교육부가 발표한 제2차 수학교육 종합계획에 따르면 수학 수업시간에 계산기 사용을 적극 추진하겠단다.  이제껏 수없이 접해왔던 수학교육 관련 소식 중 가장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일단 교육부의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는 입장이다.

 

초등학교 과정에서의 '수학'은 내가 배울 당시만 해도 '산수'라 불렸다.  그만큼 연산에 방점이 찍혀있던 터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은 아이들의 학습과정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단순한 연산이 아닌, 종합적인 논리 및 사고와 관련한 지식을 쌓는 과목이라는 차원에서 '수학'으로 그 명칭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름 승격뿐만이 아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의 위상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수학과는 비인기 학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학과는 같은 이과에 속해 있지만 여타의 학과에 비해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었기에 졸업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좁디 좁다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본격 컴퓨팅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은 점차 변모해간다.  특히 눈부신 컴퓨팅의 발전은 수학이라는 과목을 덩달아 신분 상승시킨다.

 

중앙처리장치(CPU)의 연산 능력이 일취월장하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해졌다.  최근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CG는 사실 알고 보면 모두 수학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보험 등 금융회사에서의 수학적 기법의 필요성은 말하면 입만 아플 지경이다.  심지어 제약회사에서조차 수학은 빠질 수가 없다.  일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에 있어, 각종 필요 조건을 사전에 입력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간접 결과를 도출해내는 데 사용되는 기법 역시 수학이 활용된다.  소프트웨어 개발 등 컴퓨팅 관련 업계에서의 수학은 이미 독보적이다.  그 외에도 수학이 접목되지 않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모든 게 컴퓨팅의 발전이 이뤄놓은 결과다.  결국 컴퓨팅의 발전과 수학의 인기는 궤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최근 수학 관련 학과의 인기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시대 변화와 관련없이 이과에서 부동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의예과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수학과가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지 않을까 싶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수학이란 과목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수학이 이렇듯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는 반대로 수학 포기자가 늘고 있다니 교육부의 입장에선 답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일 테다.

 

인간과 동물의 구분은 도구의 활용 여부에 의해 나뉘기도 한다.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인간 세계다.  수학은 단순 연산뿐 아니라 종합적인 사고력과 논리력을 기르는 과목이다.  때문에 기본적인 연산 방법을 제대로 숙지했다는 전제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나머지 계산은 기계적이거나 반복적인 성향의 것일 수도 있겠지 싶다. 

 

단순히 기계적인 연산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결과가 될 수 있겠거니와, 이것이 잘 되지 않는 이들에겐 수학이란 과목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에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은 그의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일 테다.  즉 단순 기계적인 연산은 도구에 의지하고, 그를 통해 남는 시간을 보다 고도의 논리와 사고력을 기르는데 활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류 문명이 발전할수록 기계적인 작업 따위를 자꾸만 도구에 떠넘기긴 채 더욱 진화해가고 있듯 말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정부는 이번 계획에 앞서 얼마 전 수학교육에 대대적인 변화를 꾀한 바 있다.  즉 단순 연산 위주의 문제가 아닌,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스토리텔링 기법의 문제들을 교과서에 수록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아이들은 오히려 수학이 싫어졌다며 난리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실린 문제를 성인인 내가 읽어 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상생활과 수학을 접목하겠다는 애초 취지는 좋았으나, 문제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난이도에 실패한 덕분에 오히려 수학이란 과목을 더욱 기피하게 만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아울러 연산이 기계적인 것임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이들의 수학 풀이를 계산기에 맡기게 될 경우 가뜩이나 기기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디지털 치매 현상 등 기술 발달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큰 틀에서 볼 땐 기계적인 연산을 계산기에 맡기고, 보다 고차원적인 사고 및 논리에 집중시킨다는 수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척 바람직스럽게 와닿지만, 정작 수학 포기자가 양산되는 이유가 연산 때문이라기보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어렵기만 한 서술형 스토리텔링형 문제들로 인한 경향이 크기에 이를 먼저 해소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할 테고, 또한 계산기 때문에 약화될지 모를 연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묘책 그리고 디지털 의존성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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