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죽 먹고 싶다는 막내아들, 그 이유가 엉뚱해

새 날 2015. 1. 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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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장 상태가 영 별로였습니다.  속이 더부룩한 게 자꾸만 가스가 차고,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신호가 오곤 해서 일상 생활마저 불편했더랬습니다.  물론 가끔 있는 일이라 그냥 대수롭지 않겠거니 여기며 식습관에만 주의를 기울여 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1주일이 넘어가도 차도가 없더군요.  웬만하면 병원을 잘 찾지 않는 편인데, 가뜩이나 최근 노로바이러스가 유행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선 왠지 꺼림직스러운 느낌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장염은 아니었고, 위장과 장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약을 처방해 주더군요.  자극적인 커피나 맥주, 우유 따위의 차가운 성질의 음식을 주의하라는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덕분에 당분간 커피와는 빠빠이로군요.  우선 식사부터 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별로 탐탁지는 않았지만 뭐 어쩌겠나요.  마음과는 별개로 몸이 그렇다는데..  그래서 당분간 죽으로 연명하기로 한 것입니다.

 

정작 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더군요.  가족 식사는 식사대로 준비하고, 더불어 제 죽까지 정성들여 끓여와야 하는 마눌님의 일손이 하나 더 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부러웠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막내 아들 녀석이 아침에 뜬금없이 자기도 죽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욘석, 한창 말 안 듣는 중학교 2학년입니다.  네, 물론 중2병을 제대로 앓고 있지요.  요새 말도 잘 안 듣고 자꾸만 어긋나려고만 하던 터라 참 꼴 보기 싫은 때입니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 한 가운데로 접어든 모양새입니다.  뭐든 삐딱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녀석이 갑자기 제가 먹는 죽을 보더니 자신도 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서울디지털신문

 

무슨 꿍꿍이인가 궁금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묻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했어요.  자기 형아도 가끔 배가 아플 때면 애 엄마가 죽을 끓여주곤 했는데, 막내 녀석에겐 아직 그런 경험이 전무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아빠나 형아가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일종의 특급 대우를 받는 모습이 나름 부러웠던 모양인 게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죽의 맛이 실제로 궁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제 옆에서 저랑 나란히 함께 앉아 죽을 먹는 욘석의 모습을 보니 약간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엉뚱해 보이기까지 했더랬습니다.  죽을 다 먹은 녀석에게 제가 물어 보았네요.



"다음에 또 먹을래?"

 

아무 대답도 않고 고개만 설레설레 젓는 녀석입니다.  맛이 없었던 게죠.  사실 속이 편해지라고 끓여 내온 죽이 일반 밥보다 맛이 있을 리는 없지 않겠어요?  한동안 미워 죽겠었는데, 죽 먹자며 덤비는 꼴이나 다 먹은 뒤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뿡뿡이 가방 메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아빠인 제게 매달리던 모습이 언뜻 연상되었습니다. 

 

그맘땐 그렇게나 예쁜 녀석이었는데 이젠 키가 저보다 훌쩍 커버렸고, 수염마저 듬성듬성하여 어느덧 면도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성장해버렸습니다.  자기딴엔 다 컸다고 생각하는지 저와는 말도 잘 안 섞으려 듭니다.  어딜 가자고 해도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녀석입니다.  그래도 엉뚱발랄하게 죽 먹고 싶다며 떼를 쓰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어릴적 예뻤던 모습이 오버랩되며 제 얼굴엔 아빠 미소가 한 가득 절로 지어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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