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어머니와 신발.. 그 따스함에 대하여

새 날 2015. 1. 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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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새해가 밝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불꽃놀이는 잠시뿐이며, 누구나 인생의 유한함을 성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왠지 다른 때보다 더욱 와닿는다.  어느 순간부터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것이 부쩍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가속마저 붙고 있는 느낌이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누구나 단 한 차례 사는 삶이니 지금의 나이는 다들 처음 겪는 일일 테다.  우린 결국 누구나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어릴적엔 죽는 일이 남의 일 같았고, 연세 지긋하신 분, 아니 중년 아저씨 아줌마만 봐도 난 저렇게 늙지 않을 것 같거니와 절대로 죽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임에 틀림없지만, 어느덧 나 또한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볼 때 반환점을 찍고 돌아선 지 한참이다.  때문에 또 다시 시작된 새해가 내게 다가와 다음과 같이 속삭이고 있는 느낌이다. 



'어서와..  지금 니 나이는 처음이지?' 

 

그래서 그랬던 걸까?  언젠가 어머니께서 구입해놓은 신발 한 켤레를 두고 연말에 어머니와 티격태격해야만 했는데, 내가 참 몹쓸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께선 아들녀석 생각하여 몸에 좋다는 신발을 기껏 구입했더니 아들이란 놈은 정작 신발 디자인이 투박하고 못생겼다며 안 신겠노라고 버티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는가.  2014년 마지막날 밤 어머니는 다시금 내게 말씀하신다.

 

 

"운동하러 갈 때만이라도 이 신발 신거라.  지금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더러워서 도저히 못봐주겠다.  이 신발은 따뜻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오래 신어도 얼마나 편한지 모른단다.  누구누구도 이 신발 신고 다니더라.  난 오히려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까 봐 음식점 같은 곳에 갈 땐 절대 안 신고 다른 신발 신고 다니잖니."

 

"어머니, 그 신발 안 신는다니까요.  지금 이 운동화가 얼마나 편한데요.  편하면 그만이잖아요.  그리고 그 신발은 너무 못생겼어요."

 

실은 어머니가 사오신 신발은 기능성에 방점이 찍힌 터라 정말 못생긴 데다 투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촐싹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외모 따위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나였지만, 이런 나조차도 설레설레 고개를 저을 만큼 정말 디자인은 완전 꽝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몇 차례 신어보았지만 솔직히 편한 느낌은 딱히 없었다.  내겐 운동화가 훨씬 나았다.

 

그러나 난 못내 찜찜했다.  어머니께서 부러 생각하여 장만한 신발이거늘 그냥 못이기는 척하며 신으면 그만일 텐데, 부득불 신지 않겠노라며 끝끝내 우기고 나선 내가 너무도 못마땅했다.  나중에 분명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2015년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너무도 차가운 기온 탓에 바깥의 수도가 얼어붙고 말았다.  이를 녹이기 위해 물을 끓이던 중 어머니께서 방에서 나오신다.

 

"어머니, 어제 말씀하신 그 신발 꺼내주세요.  운동이나 마실 다닐 때 신고 다닐게요."

 

"그래, 이게 얼마나 좋은데, 이처럼 편한 신발도 없단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그래, 이렇게 좋아하실 일을 왜 메번 내 고집대로만 하려 했나 싶다.  어머니의 신발 예찬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 신발엔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게 분명하다.  올해엔 이 신발을 열심히 신고 다니며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듬뿍 느끼고, 아울러 예찬 일색이었던 기능 하나하나를 몸소 체험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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