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한도전 토토가 열풍이 씁쓸한 까닭

새 날 2015. 1. 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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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사회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두드러진 문화적 현상 하나가 있습니다.  다름아닌 복고 열풍입니다.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장안에 화제로 떠오르면서 장년층 이상 세대의 향수를 제대로 자극시킨 탓인지 이 영화가 그들의 발걸음을 상영관으로 자꾸만 옮겨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관객수가 어느덧 800만에 육박하였고, 곧 1천만 관객을 찍을 기세입니다. 

 

그보다 어린 세대들에게도 복고가 대세로 자리잡은 모양새입니다.  이들은 영화보다 가요를 통해 과거의 향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MBC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토토가' 코너에서는 90년대 인기몰이를 했던 가수가 대거 등장하여 그들의 히트곡을 재차 선보인 바 있습니다. 

 

재밌었다거나 감동 받았다는 반응 일색입니다.  심지어 해당 방송을 시청한 일부는 너무 고맙다거나 눈물을 흘렸노라는 격한 반응마저 쏟아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저녁에 지인들과 들렀던, 젊은이들로 가득찬 대학로 모 음식점에선 '토토가'에서 방송을 탔던 노래 전체가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쯤되면 신드롬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무한도전 방송 이전부터 90년대 가수들이 등장하는 콘서트 류는 지속돼 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만들어내지 못해왔던 터라 이렇듯 신드롬 현상으로까지 진화하게 된 건 순전히 무한도전이라는 도구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만큼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은 필수 문화 코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형태와 반응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왜 이렇듯 때아닌 복고 열풍이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것일까요?  여타 이유들도 많겠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작금의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말 국민소득이 2만8천달러를 넘어서며 7%의 성장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대통령은 곧 3만불 시대를 맞이할 것처럼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일반 서민들에겐 그저 다른 세상 내지 남의 얘기로만 들려올 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모 언론보도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12년까지 기업들의 자산은 4.3배나 커졌지만 가계의 자산은 3.5배의 성장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부의 분배가 기업 쪽으로 더욱 쏠렸다는 의미입니다.  경제 성장의 과실 대부분이 기업에게로 향하고, 가계 소득은 상대적으로 늘지 않고 있는 현상입니다.


ⓒ한겨레

 

이와 같은 결과는 고스란히 가계소득증가율과 기업소득증가율의 격차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IMF 환란 직후인 2000년 이후 가계소득증가율은 2%대에서 1%대로 쪼그라든 반면, 기업소득증가율은 18% 이상으로 고공성장을 거듭하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2014년 국민소득 증가율이 7%를 나타내며 곧 3만달러의 도달을 예고하고 있듯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가계의 살림살이는 외려 갈수록 녹록지 않아 궁핍해져 가고 개인들의 지갑이 지나치게 얇아지고 있는 느낌은 바로 이러한 결과물 때문입니다.

 

해당 통계 수치만으로도 그동안 기업의 성장이 국가 경제 성장의 선순환으로 작용하여 결국 가계의 성장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란 이른바 낙수효과가 얼마나 근거없으며 허황된 이론인지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배임 및 횡령이란 중죄를 저지르고 현재 복역 중인 재벌 총수 구하기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어이없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IMF사태가 닥치기 전 그러니까 90년대는 한국 사회의 호황기라 불리던 시기입니다.  당시 모두에겐 희망이란 걸 품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적어도 IMF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김건모, 터보 등이 불렀던 신나는 댄스곡은 아마도 이 시기를 상징하는 대표곡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가계살림은 지속적으로 쪼그라들며 팍팍해져 가고, 정치권과 집권세력은 국민들에게 좌절감을 심어놓은 채 어떠한 불의에도 전혀 분노할 줄 모르도록 순응케 만들거나 함량미달의 정책으로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누구든 너무도 억울하거나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울 만큼 격한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아주 단순한 위로 한 마디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쏟기 마련입니다. 

 

작금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전 세대를 짓누르고 있는 끝도 모를 장기 침체의 경기 불황, 그렇다고 하여 미래마저 담보할 수 없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 시기적 상황에서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호시절 즐겨 듣던 가요 한 곡만으로도 당시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한 통의 진통제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토토가의 음악을 들으며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격한 감동에 빠져든다 한들 이는 잠깐동안 효험을 보였던 진통제의 약효가 다 떨어지자마자 이내 다시금 고통으로 다가오듯,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암울한 상황에 대해 전혀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없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작금의 복고 열풍이 제겐 외려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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