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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삶의 토대를 뒤바꿔놓은 '국가부도의 날'

1997년 대한민국은 OECD에 가입, 선진국에 진입하기라도 한 양 사회 전체가 온통 술렁거렸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각종 경제 지표는 호황 일색이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지극히 낙관적이며 이를 의심할 만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곧 국가부도를 불러올 만큼 엄청난 규모의 경제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었다. 이 같은 내용이 윗선에 보고되고, 정부는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뒤늦게 경제 전문가로 이뤄진 비공개 대책팀을 부랴부랴 꾸리게 된다. 당시 위기 해결 방식을 놓고 대책팀 내부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었다. IMF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측의 주장과 IMF의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완전함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이 사람이라고 하여 다를까? 그는 어느 누구보다 온화한 감성과 따스한 심성을 지녔으나 내향적인 데다가 민감한 성격으로 인해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질책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우울증처럼 지독하게 우울하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하여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기분 상태가 이 사람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는 누구라도 그러하듯 낮은 자존감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겠거니 하고 생각해 왔으나, 알고 보니 이 증상 또한 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기분부전..

번잡하고 지루한 판타지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미국 마법부에 붙잡혀 있던 가공할 위력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조니 뎁)가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예상대로 마법사 사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가 순혈 마법사의 세력을 규합,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으며, 서서히 그의 마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덤블도어(주드 로)는 뉴트(에디 레드메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를 받아들인 뉴트는 유럽으로 이동, 제이콥(댄 포글러), 퀴니(엘리슨 수돌), 티나(캐서린 워터스턴) 등과 차례로 재회, 크레덴스(에즈라 밀러)를 찾아나서는데... 이 작품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격인 '신비한 동물사전'의 2편에 해당한다. 해당 시리즈물은 2016년 1편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5편이 차례로 공개될 ..

진작 할 걸 그랬어

유명 아나운서에서 책방 주인으로, 다시금 작가로 거듭난 김소영, 그녀가 MBC에 입사한 건 지난 2012년의 일이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간판 뉴스 진행을 꿰차는 등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던 방송국 경영진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당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그녀가 하루종일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고 책읽기가 습관이었던 사실이 그나마 위안으로 다가왔다. 반 강제적으로 회사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토록 좋아하던 책만큼은 원없이 읽게 됐다. 책이 존재했기에 당시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었던..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도로 한복판에 삐딱하게 세워진 채 길을 막고 있는 차량 한 대, 그 뒤로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있는 또 다른 무수한 차량들, 운전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켜달라며 클락션을 연신 울려댄다. 바빠 죽겠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민폐인가 모르겠다.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일지 너무 뻔했다. 빨리 벗어나고픈 뒷차 운전자들 입에서는 거친 욕지거리가 한 바가지씩 쏟아져 나왔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잠시 후 세워진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누군가가 다쳤는지 한 사람은 다친 이를 부축하며 차에 태우고 있었고,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또 다른 한 사람은 곁에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뒷차량들의 클락션 소리는 그제서야 잦아들기 시작한다. 이렇듯 나름의 사정..

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

‘퇴준생’이라는 신조어의 탄생 배경에는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영향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녀에게는 그날이 그날 같은, 매일 반복되는 회사생활이 언젠가부터 지겹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30대 후반에 이르자 조직 내에서 중견 직원 대접을 받게 되면서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위치라는 회사 내 역학 구도를 고려, 처신과 정치가 필요해진 것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요소였다. 즉, 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일 이외의 요소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건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채 언제든 이를 제출하고 회사로부터 영원히 탈출을 꿈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도리어 조직 생활이 즐..

첫 발자국을 향한 인간적인 고뇌 '퍼스트맨'

연신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덜덜 거리기까지 하는 좁아터진 동체, 이곳에 탑승한 사람은 제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 해도 온전하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온몸이 혹사를 당하기에 꼭 알맞다. 이 동체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인물이 탑승해 있다. 동체는 다름 아닌 우주선이며, 일순간 대기권을 벗어나자 그제서야 막간의 평화가 찾아온 듯 진동과 온갖 소음이 일시에 멈춘다. 그와 동시에 조그맣게 난 창 밖으로는 푸른 행성 지구의 경이로운 풍경이 닐의 눈앞에 활짝 펼쳐진다. 때는 바야흐로 1960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의 대표 주자격인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이 점입가경에 이르던 시기이다. 이들의 경쟁은 어느덧 우주라는 외연으로까지 확장됐다. 하지만 미국은 번번이 소련에 뒤처지며 자존심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아시나요?

여기 무척 기상천외한 식당 하나가 있다. 손님이 먹고자 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전혀 다른 메뉴가 나올 수 있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되레 즐거워하기까지 하는 식당이다. 이름부터 조금은 특이하다. 간판에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 쓰여 있다. 간판 이름 그대로 간혹 자신의 주문과 다른 메뉴가 서비스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식당만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만두가 나오거나, 후식으로 콜라를 주문했음에도 아이스커피가 나올 수 있다. 보편적인 고객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대가를 바랄 테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자신의 주문과 달리 전혀 엉뚱한 메뉴를 받아들고서도 왠지 함박 웃음을 짓는 등 시종일관 관대하다. 세상에는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더라도 까칠..

용서가 증오에 비해 월등히 값진 이유 '파도가 지나간 자리'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전쟁 영웅 톰(마이클 패스벤더), 그는 어느 날 한적한 섬 야누스의 등대지기로 취업한다. 등대 관리인의 딸인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은 점잖으면서도 진중해보이는 그를 내심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그러나 전쟁통 속에서 감정을 잃은 채 살아온 그였기에 비록 그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관심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일종의 전쟁 후유증 탓이다. 하지만 결국 마음의 문을 조심스레 연 톰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두 사람은 야누스섬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꾸려나간다. 이 섬은 어느 곳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병원도 학교도 교회도 일절 없이 오로지 두 사람만이 서로를 의지해야 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외부와의..

사이코패스와 열혈형사의 치밀한 심리극 '암수살인'

부산 자갈치시장, 살인범 강태오(주지훈)가 체포되던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그는 자기 전담 형사도 아닌 마약반 김형민(김윤석) 형사에게 이번 살인 혐의까지 포함하여 모두 7건의 살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실토한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각, 그리고 방법까지 세세히 적힌 범죄 리스트를 건네받은 김 형사, 물론 의심스러운 정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신의 촉을 믿고 이를 파헤쳐보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마는 김 형사다. 강태오가 알려준 사실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 수형시설에 수감돼 있는 강태오를 찾아가 그의 속내를 떠보니 김 형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치금 입금 및 감옥 내에서 필요한 기타 물품 등의 반입과 강태오 자신의 범죄 행각을 놓고 김 형사와 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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