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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SKY캐슬로 대변되는 우리 교육 현실 바꿀 수 있나

둘째 아이는 어릴 적에 자주 넘어졌다. 말도 늦게 트였고 운동신경도 느린데다 성장도 보통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뎌서 처음에는 막연히 그런 이유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4살 이후면 혼자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툭하면 넘어졌다. 문제는 넘어질 때마다 스스로의 신체를 보호하지 못해 자꾸만 머리를 땅에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충격으로 큰 혹이 생기거나 구토를 하는 바람에 병원에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CT를 찍고 의사가 괜찮을 거라는 진단이 나와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다. 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왜 자꾸 넘어지느냐며 아이를 채근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눈이 안쪽으로 몰리는 선천성 사시였다. 그 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말모이'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사용이 엄격이 금지되고 이름마저도 일본식으로 바꿔야하는 창씨개명이 진행되던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한글대사전 편찬을 위해 전국의 방언을 수집, 이를 표준화하는 말모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소매치기를 일삼으며 수차례 옥살이를 경험한 김판수(유해진)는 근무 중이던 극장에서 해고당한 상태, 중학생 아들의 월사금 마련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만 하는 처지였던 그는 과거 옥살이를 하며 낯을 익혔던 조선어학회의 큰 어르신 조갑윤(김홍파) 선생과 우연한 기회에 연이 닿으면서 학회의 잔심부름 등을 담당하는 인력으로 채용된다. 한편 학회 회장인 류정환(윤계상)은 매사 껄렁껄렁한 태도에 불성실하기까지 한 김판수가 영 탐탁지 않게 다가왔으나 그를 ..

진지하지만 결코 진지하지 않게 '그린 북'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나이트클럽에서 흔히 ‘기도’라고 불리는 잡일과 함께 사람들로 인해 발생할 법한 시끄러운 일의 뒷정리를 맡은 인물이다. 클럽이 내부수리 등의 이유로 휴관에 들어간 어느 날, 지인이 알선해준 운전기사 모집에 지원하게 된 토니, 피아니스트이자 박사이기도 한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와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셜리는 8주 동안 미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음악 연주회에 참석해야 했고, 토니가 그의 발이 되어줌과 동시에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언뜻 봐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장도에 오르게 되는데... 토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뭐든 자기 멋대로다. 성에 차지 않으면 주먹부터 나가는 다혈질에, 입담도 거칠기 짝이 없다. 허풍은 또 어떤가. ..

유화 애니로 되살아난 천재 화가 고흐 '러빙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로버트 굴라직)가 사망한 지 1년 뒤의 일이다. 동생 테오에게 남겨진 빈센트의 편지가 발견된다. 집주인은 빈센트와 친구 사이였던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에게 이를 전달하고, 그는 다시 아들인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을 통해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아르망은 그다지 탐탁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빈센트의 동생을 찾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테오 역시 빈센트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아르망은 결국 빈센트와 각별한 사이였던 의사 가셰(제롬 플린)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를 만나 빈센트의 편지도 전해주고, 빈센트에 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결국은 휴머니즘 'PMC: 더 벙커'

글로벌 군사기업 PMC, 에이헵(하정우)을 팀장으로 하는 12명의 용병들이 미국 CIA의 미션 수행을 위해 모처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미션 수행 현장은 DMZ 부근에 위치한 지하 30미터의 벙커, 망명이 계획된 북한의 유력인사를 낚아챈 뒤 무사히 의뢰처에 넘겨주면 마무리되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을 급습하니 그곳에는 해당 인물이 아닌 북한 지도자 '킹'이 나와 있었다. 돌출 상황이었다. 에이헵은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는 킹을 잡는 것으로 작전을 급변경하고 동료들과 함께 그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션 완료의 기쁨을 만끽할 겨를조차 없었다. 훨씬 강력한 무기와 규모를 갖춘 또 다른 PMC가 그들을 압박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국 대로 벙커를 폭발시키기 위해 전투기를 벙커 상..

세계를 만드는 방법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이맘때의 날씨가 연상된다. 온통 잿빛투성이다.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 그렇다기보다는 일조량이 연중 가장 적고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는 낮은 기온이 암울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느낌 때문인 듯싶다. 작가의 필치는 날카롭다 못해 서슬이 퍼렇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은 그와 반대로 따스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말이다.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글의 양식인 '서사' 예술 계통의 작가라 그런 것일까? 손아람은 얼마 전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2009년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소설 '소수의견'을 쓴 작가다. 작가의 관심 영역과 세계관은 그 폭이 워낙 넓다. 그만큼 우리 사회를 향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 '세계를 만드는 방법'은 작가가 그동안 여러 종..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얼굴도둑'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는 40대 남성 세바스티앙 니콜라(마티유 카소비츠)는 자신의 삶에 영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워낙 말수가 적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 무리 속에 섞여 있을수록 존재감은 그들과 함께 조용히 묻히고 만다. 그런 그에게는 매우 독특한 취미 하나가 있다. 아니 취미라기보다는 그만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표현이 왠지 더 적절할 것 같다. 그가 업무차 고객에게 소개해준 집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고객 얼굴의 본을 뜨고 이를 자신의 얼굴에 뒤집어쓴 채 그의 삶을 모방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도 이젠 이골이 난 건지 임계치에 이른 듯싶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는 회의감이 짙게 배어나온다. 그러던 어느날, 유명한 바이올리..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클라라(매켄지 포이)는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는 아빠(매튜 맥퍼딘)가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다락방에 틀어 박혀 동생과 함께 장난에 심취하는 일이 그녀에겐 유일한 위안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빠는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선물을 클라라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전달해준다. 클라라에게는 핀 텀블러가 주어졌지만, 열쇠가 없는 까닭에 열어볼 수가 없었다. 시큰둥하던 클라라, 아빠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면서 핀 텀블러를 열 수 있는 인물은 오직 대부인 드로셀마이어(모건 프리먼)뿐이라 짐작, 그를 찾아 나선다. 때마침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놓은 대부, 클라라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그가 마련해놓은 실을 따라 가던 도중 놀라운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세계..

타인의 불행을 흥미로 소비하는 현대인들 '선량한 시민'

은주는 한 가정의 주부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한 이래 시부모의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 둘과 함께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40대 아줌마다. 시부모의 집은 흡사 과거로 돌아간 듯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변두리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최대한 세를 많이 놓을 요량으로 디자인 개념이라곤 일절 없이 건평만 크게 늘려놓은 이 집은 요즘 유행하는 최신형 아파트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은주는 이곳에서 한창 공부 중인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과 더불어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의 수족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이다. 그녀는 언젠가 독립하여 자신만의 음식점을 차리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지만, 경제권을 움켜 쥐고 있는 시아버지의 태도를 보아서는 그날이 언제쯤 오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

기시감과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소설 '해리'

모 인터넷신문사 기자인 한이나는 어머니의 병 간호 때문에 고향인 무진에 내려오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어릴 적 아련한 기억을 소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과거 함께했던 인물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알고 지내온 동창 해리와 무진 성당 신부 백진우가 바로 그 인물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녀에게는 꺼림직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리와는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나 한이나에게 저장돼 있던 그녀의 몸짓이나 행동으로부터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부감 따위가 전해져 온다. 백진우는 보수 일색의 무진 교구에서 유일한 진보 색채를 띤 성직자로 평가 받고 있는 혁신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백진우가 한이나에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치욕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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