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인 '러버덕'을 보고 있자니 어릴적 물놀이할 때마다 가지고 놀기 위해 손에서 쥔 채 이를 놓지 못했던 고무 인형을 연상케 한다. 손으로 꾹꾹 누를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던 그런 류의 인형 말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공공미술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처음 제안했다던 '러버덕 프로젝트'가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서울로 향하더니, 마침내 그 거대 고무오리의 귀여운 자태를 석촌호수에 드러냈다.
ⓒ한겨레신문
그런데 녀석이 홍콩으로부터 먼길을 날아 오느라 적잖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석촌호수에 띄워놓은 당일, 그러니까 14일, 그만 바람이 빠진 채 벌러덩 눕고 만 것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제10차 아셈 정상회의에 참석차 이탈리아로 출국하던 날이기도 하다. 물론 지극히 우연이다. 하지만 내겐 왠지 그렇게 와닿질 않는다. 왜일까?
대통령은 출국 며칠전, 정확히 지난 6일, 국무회의석상에서 정치권 일각으로부터 발현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며 이를 차단한 바 있다. 적어도 자신이 국내에 없는 동안 차기 권력을 향한 얘기가 오가지 못하도록 발빠르게 조치한 셈이다. '러버덕'이 장거리를 이동하느라 지치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연유로 김이 빠져 드러누웠던 게 아닐까 싶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극구 차단하려는 이유는 누구든 알 만한 일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거다. 집권 후반이 되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는 공포의 '레임덕' 처지가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일 테다.
레임(lame)은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의’란 뜻을 지니고 있기에 사전적 의미로써의 '레임덕'은 기우뚱거리는 절름발이 오리를 뜻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레임덕'은 임기 후반에 접어든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를 일컬으며, 그들의 집권 말기에 나타나는 지도력 공백 현상을 의미한다.
절름발이 오리 레임덕 ⓒPokerfuse.com
최근 집권 2년차에 접어들기 무섭게 레임덕 현상을 맞은 정치 지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만의 정치 지형이 낳은 기현상이긴 한데, 문제는 갈수록 그 시기가 앞당겨진다는 데에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예외일 순 없다. 그런데 첫날 바람이 빠진 채 축 늘어져있다 이내 바람이 채워져 다시 탱탱해진 러버덕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모습이 연상되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그는 현재 중국 상하이에 머물고 있다. 그의 16일 발언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양상이다. 정기국회가 끝나게 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테고, 봇물 터지면 이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란 언급 때문이다. 대통령의 개헌 논의 차단에 일종의 반기를 든 셈이다. 대통령이 굳이 개헌 논의를 막지 않는다면 김 대표의 발언에 어느 정도의 힘이 실리리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박 대통령도 곧 귀국길에 오를 테고, 김무성 대표 역시 귀국길에 오를 테지만, 과연 김 대표의 발언대로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뤄 벌써부터 차기 권력으로 모든 관심의 향배가 쏠리며 마치 블랙홀처럼 전체 이슈를 빨아들여 현재의 권력을 '레임덕'으로 바꾸어 놓게 될지, 그렇지 않으면 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차단했던 개헌 논의 움직임이 그녀의 기세에 눌린 채 수면 아래로 잠겨 결국 김 대표가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하게 될지 지켜보는 우리들 역시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오남연 作 미운오리새끼 ⓒhttp://yonhapmidas.com
귀요미 '러버덕'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되든, 아니면 김무성 대표가 '미운오리새끼'가 되든, 누군가는 분명 무언가가 될 게 틀림없다. 현재는 '러버덕'이 대세다. 향후 과연 어느 오리가 대세가 될까?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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