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해 여고생 사건을 향한 두 개의 시선

새 날 2014. 8. 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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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발생한 김해 여고생 살해 사건의 전모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작정이라도 한 듯싶다.  지난달 말 불거졌던 28사단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의 여진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라 그 충격은 더욱 배가됐다.

 

20대와 10대에 의해 벌어진 도를 넘는 엽기적인 범죄 행위에 시민들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온라인 공간 역시 발칵 뒤집혔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 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향해 강력한 처벌 요구가 봇물을 이루는 현상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파렴치한 범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청소년들의 엽기 행각을 놓고 청소년 범죄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미디어 매체들 역시 이를 한껏 부추기고 나섰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최근 개봉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한공주'와 '방황하는 칼날' 등을 꺼내들며 미성년자라고 하여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온 사법부를 질타하고, 비록 심신이 아직 미약한 미성년자라 해도 잔혹한 범죄만큼은 성인과 같이 높은 형량에 처해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그 와중에 사형제 폐지 논란도 다시 불을 뿜었다. 

 

심지어 지난 1988년 일어났던 일본 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을 상기시키며, 갈수록 혀를 내두를 만큼 끔찍한 청소년 범죄가 극성을 부리자 일본의 경우 소년범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결국 선회했던 이야기마저 회자되고 있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아무리 미숙한 아이들이라지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판단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포인트는 아이들에게 맞춰져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잔혹함이 흡사 싸이코패스를 연상시킬 만큼 끔찍하지만, 그 배후엔 그들만의 단독 범행이 아닌 20대 어른들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사건이 더 파헤쳐지고 전모가 모두 드러나야 정확한 정황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섣불리 아이들에게 모든 원죄를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결과적으로 볼 때 20대 성인 남성들의 강압에 의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처진다.  처음부터 가출 여학생들을 범행 대상으로 노리고 그들을 성매매시켜 돈을 착취하던 와중에 숨진 여고생이 자신들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자 또래들을 이용, 숨지게 했을 가능성 따위 말이다. 

 

범행에 가담한 또래들은 그들 의지에 의해서리기보다 이들 힘센 20대 남성들에 의해 심신이 억압된 상태에서 자신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행위 아니었을까 싶다.  대전에서 이들 가해 여학생 중 한 명이 성매매를 시도하려다 꽃뱀이라며 의심했던 40대 남성을 이들 가해 남성들이 또 다시 살해했다는 대목에서 그들의 잔혹한 진면목이 가감없이 드러났다.  때문에 이들 여학생들은 또 다른 피해자라 여겨진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실제로 가해 여학생들의 변호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취지의 발언이 있었단다.

 

"여학생 가운데 허모양과 정모양은 지난해 말 가해 남성 중 2명에 붙들려 조건만남을 강요 받았다.  가해 여학생 2명이 당한 범죄 수법은 숨진 윤양이 당한 수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20대 남성들에 의한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했던 행위였노란 항변이다.  물론 이를 전적으로 믿을 순 없다.  단순히 감형을 위한 제스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들 20대 남성들의 범행은 다행히 대전 성매수 남성의 살해 행각을 통해 들통나게 됐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끔찍한 범죄 행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따라서 이들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숨진 여고생의 살해에 가담했던 가해 여학생들마저 또 다른 희생자가 됐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은 청소년들에 의해 벌어진 잔혹극이라기보다 싸이코패스적 성향을 띤 20대 성인 남성들에 의해 계획되어지고 조종된 끔찍한 사건이란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다만, 미디어 매체들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가 마치 10대 청소년들에 의해 벌어진 끔찍한 범행인 양 몰아간 경향이 짙다.  언론의 보도행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 차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가해 청소년들은 그저 어른들에 의해 이용된, 또 다른 희생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잔인무도한 청소년 범죄라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고 이번 사건을 새롭게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에 아이들은 적응해 나가며 어른들의 아바타가 되어간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라면 이는 결국 우리 어른들 모두의 잘못이다.  우린 가해 청소년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돌팔매질보다 외려 냉정한 시각을 견지한 채 왜 이런 잔혹한 범죄가 자꾸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를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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