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덕성여대 에볼라 논란? 진짜 문제는 '인종비하'

새 날 2014. 8. 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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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의식이 많이 개선된 건 사실입니다.  물론 사회 곳곳에선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상존한 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3일 아침 각 포털 사이트마다 '덕성여대'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지역인 아프리카 대륙 일부 국가들이 참여하는 유엔 여성기구 주관의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행사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대회는 4일부터 덕성여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요.  이의 개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지나칠 정도로 뜨거워 우리의 안전의식이 어느새 이 정도까지 높아졌나 싶을 만큼 의아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덕성여대 홈페이지 캡쳐

 

아프리카인들의 입국 취소는 물론이거니와 대회를 아예 개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며 심지어 수만 명에 이르는 이들이 온라인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명칭 후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가족부에 대한 질타도 함께 쏟아졌습니다.  물론 그만큼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있다는 방증이긴 합니다.

 

안전에 대한 대비 그리고 질병 확산 예방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린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유엔 행사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부 시민들이 이의 위험성을 알리며 토로하자 그제서야 뒤늦게 뒷북 조치에 나선 행태는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의 안전의식은 이번 덕성여대 논란을 통해 보여주었던 수준만큼 분명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긴 한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올 여름 휴가의 절정은 7월말부터 8월초까지였으며, 안타깝게도 이 극성수기에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 예상되며 각 미디어 매체들은 벌써부터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습니다.

 

ⓒ뉴스와이 방송화면 갴쳐

 

그런데 결과는 어떻던가요?  태풍이 남해안과 제주도를 할퀴며 점차 북상하고 있던 와중인 2일 휴가지로 향하는 차량들로 전국 고속도로는 북새통을 이루며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각에도 태풍은 한반도를 향해 비록 아주 느린 걸음이지만 강한 바람과 엄청난 비를 뿌리며 이동 중에 있었습니다. 

 

 

미디어 매체에선 시시각각으로 태풍의 이동경로를 전하며, 긴박한 상황을 연신 타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풍경보와 주의보 그리고 강풍주의보 등 각종 기상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의 다수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휴가지로 향하거나 계곡 등에서 이미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강심장들입니다.



우린 여름철마다 급격하게 불어난 계곡물에 고립된 채 구조를 기다리던 야영객들을 숱하게 접해왔습니다.  태풍이 올라와도 남의 일인 양 한가로이 휴가길에 오르는 등 기상청의 예보마저도 무시한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의 사례들입니다.

 

ⓒ연합뉴스

 

태풍이 한반도에 생채기를 내던 지난 3일 새벽 경북 청도군 신원리 계곡에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일가족 등 7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는 밤새 고립된 야영객 수십명을 구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은 채 배회 중이란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럴진대 어찌하여 에볼라 바이러스만큼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걸까요?  며칠 전부터 아래와 같은 글이 각종 커뮤니티에 등장하여 퍼나르기가 시도된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른바 공포감 확산입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캡쳐

 

내용인즉슨 덕성여대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서아프리카 국가가 포함되어 있어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염 우려가 있으니 이를 널리 알려 행사를 막자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천에서 열리는 세계타악축제에 포함된 기니 역시 입국을 막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타악축제에 참여하는 기니 출신은 이미 입국한 걸로 전해졌으며, 그들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어 에볼라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하루아침에 불식되고 어느덧 안전 의식이 높아져 이렇듯 짧은 시간 내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진 건 분명 아닐 것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오고 있는 데다 SNS를 타고 순식간에 전파되는 매체 특성이 더해져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캡쳐

 

다름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 관련 소문이 이토록 빠르게 전파되며 공포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던 배경엔 아프리카인들을 향한 인종 비하적 요소가 한 몫 더해진 것입니다.  관련기사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기사 댓글 캡쳐

 

평소 아프리카를 미개한 지역, 아프리카인들을 천박한 인종으로 인식하고 있던 찰나 그곳으로부터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과 반감을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그들 모두를 향해 원죄를 뒤집어 씌운 채 한꺼번에 싸잡아 비하 내지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며 매우 위험한 요소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렇듯 무차별적인 아프리카에 대한 혐오나 비하 행태를 통해 그들이 참여하는 국제 행사마저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행위가 과연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에볼라 바이러스가 두렵다기보다 아프리카의 흑인이 두렵거나 싫어서 벌이는 행동 아니었을까요?  여성가족부가 명칭을 후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행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공포감을 한껏 몰고 오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비해야 하는 건 분명 맞는 일입니다.  세월호 여파로 인해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한다는 인식엔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며 또 실제 그렇게 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덕성여대 논란은 우리의 무의식 속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 인식과 여성에 대한 비하 의식이 에볼라의 무차별적 공포와 맞물리며 상승작용을 일으켜 해프닝을 빚은 건 아닌지 조심스레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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