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악재 앞 대통령의 흔한 대처 '경질'이 능사는 아니다

새 날 2014. 8. 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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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과 경찰청장이 동반 사퇴했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유병언 회장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경찰 조직의 무능함에 대한 책임이 표면상 이유로 보인다.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개 질타에 따른 강한 압박 때문으로 읽힌다.

 

2기 내각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최근 바닥까지 추락한 대통령의 지지율을 재차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 국정 운영의 동력을 되살려 반전을 꾀하고자 하는 일종의 묘수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에 대한 경질만이 능사인가에 대해선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해결한답시고 꺼내든 칼날은 언제나 조직 수장에게로 향했다.  전가의 보도다.  물론 여러 효과를 노린 포석일 테다. 

 

우선 조직 혁신을 위해선 기존 수장으로는 모양이 살지 않는 데다 자칫 효과마저 반감될 수 있기에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옵션이다.  아울러 징벌적 조치의 하나로 해당 조직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악재 앞에만 서면 유독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어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잠깐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타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 한 노림수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할 듯싶다.

 

ⓒ세계일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동안 기관장들의 잦은 교체가 조직의 동요를 불러오거나 업무 공백을 유발해 온 경향이 짙기에 이를 예방하고, 또한 책임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키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하며 주요 공약 사항으로 국민 앞에 약속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해당 공약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결과는 적이 실망스럽다.  여타의 주요 공약들과 마찬가지로 진작 파기됐다.  물론 대통령의 공약 파기야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닐 테니 이젠 대수롭지 않게 와 닿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러한 대국민 허무감 유발조차 치밀한 노림수일지 모른다. 

 

다른 기관장에 대한 언급은 않겠다.  경찰청장과 육군참모총장이 경질되었으니 그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경찰청장의 경우 지난해 10월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김기용 청장을 이성한 청장으로 교체한 바 있다.  당시에도 공약 파기에 대한 성토가 들불처럼 일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시 교체하는 셈이 된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취임했으니 1년을 아직 못 채운 시점이다.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노란 공언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다면 대통령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매번 해당 기관장을 교체할 셈인가?  

 

허나 경질이 능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우린 세월호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주문하며 관련 기관장들을 대거 경질시켰다.  그렇다면 그후 바뀐 건 과연 무얼까?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위한 토대가 될 세월호 특별법은 안하무인 격의 청와대와 여당의 반대에 부딪히며 여전히 진전 없이 발이 묶인 채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재발 방지 장치 마련 또한 가능할 텐데, 국민의 정서와는 아랑곳없이 정치적 논리에 맡긴 채 저들은 이의 발목을 한없이 붙들고만 있다.

 

ⓒ전자신문

 

기관장 경질은 '해경해체'의 논리와도 비슷하다.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에 실패한 해경 조직에 가해진 징벌은 다름 아닌 조직의 해체였다.  어차피 해경 조직이 없어진다고 하여 해당 업무가 사라지는 건 아닐 테니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대국민 깜짝쇼보다 우선 책임자들을 엄벌하고 조직 혁신에 사활을 걸었어야 함이 옳다.  결과는 어떤가?  '해경해체'라는 대통령의 폭탄선언에 파편만 무수히 튀었을 뿐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이후 특별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해경해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의 패러디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의 2기 내각이 제대로 운영되길 바라고, 또한 국정 운영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면,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의 경질에 앞서 자신부터 먼저 돌아봤어야 함이 옳다.  대통령의 직책은 남을 질책하며 책임 추궁을 일삼고, 일벌백계하겠노라 잔뜩 엄포만을 늘어놓는 버럭대장의 자리가 분명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청와대와 스스로의 시스템부터 먼저 개선했어야 함이 옳다.  스스로의 개혁 없이 애꿎은 아랫사람들만 교체해 봐야 구태의 악습을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다. 

 

이번에 불거진 군 문화의 문제점과 경찰 조직의 느슨함은 해당 조직 수장의 경질이 답이 아니다.  우선 군대 내 만연된 몹쓸 문화와 경찰 내부 조직을 혁파하여 전혀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게 정답이다.  이는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사안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직 수장을 경질하는 일은 대통령의 애초 공약과 어긋나는 결과이자 달리 생각해 보면 분위기 반전을 노려 작금의 위기를 일단 모면해 보고자 하는 꼼수로만 읽힐 뿐이다.  대통령의 악재 앞 대응 자세가 정녕 이뿐인가?

 

지금처럼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더군다나 빼내지도 못한다면, 제 아무리 기관장들을 경질한다 해도 더욱 허망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며, 집권 2기 내각 역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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