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앞서선 안 될 이유

새 날 2014. 8. 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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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교육부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 시안을 발표했다.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을 자사고로 지목하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는 방식 등이 거론됐다.  이에 자사고 교장을 비롯한 교육 주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신문, 2013.9.12 집회

 

9월 12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모인 자사고 학부모들은 일반고 강화 방안을 자사고 무력화 정책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물론 문용린 당시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 자사고의 폐지는 절대 없을 거라며 누누이 강조해 오던 터였고, 결국 10월 교육부가 확정 발표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에는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 축소는커녕 면접권 부여가 포함되는 등 외려 자사고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꼴이 된다.

 

1년 뒤인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조희연 당선자는 선거 공약으로 자사고 폐지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당선 이후 실제로 2016학년부터 면접 선발권을 폐지하고 전원 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겠노라 밝혔다.  자사고에 몸담고 있는 주체들이 또 다시 반발했다.

 

지난달 21일 자사고교장연합회 소속 교장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방침을 전면 반박하며 이를 시행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들도 이에 동조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같은 달 25일 지난해 집회를 벌였던 장소인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또 다시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를 개최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목청껏 외친 것이다. 

 

ⓒ서울신문, 2014.7.25 집회

 

불과 1년 남짓만에 자사고 학부모들은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 자사고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상당히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그런데 이러한 데자뷰 현상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듯 보였다.  자사고 학부모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뒤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었는가 보다.  8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자사고가 학부모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자녀에게 상점 10점씩을 부여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학교에서는 보통 학생의 수업 태도가 좋거나 학급 당번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경우 2점 내지 3점의 상점을 부여해 왔기에 10점은 상당히 높은 점수란다.  그렇다면 정확히 집회 참석 두 번만에 20점을 받을 수 있으니, 해당 학교의 기준에 따르면 생활기록부 기재는 물론이거니와 학교장상 수상까지 가능해지는 셈이다.

 

ⓒ경향신문

 

아울러 최근 해당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선 지난 6일 열린 2차 집회 참석시 또 다시 상점을 부여해 준다는 문자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인가?  어떻게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이는 금전 거래만 없었을 뿐 돈으로 매수하여 집회 참석을 꼬드기는 일부 파렴치한 정치 집단들의 행태와 몹시도 유사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에서 점수를 이토록 자의적으로 부여해도 되는가?  지나치게 비교육적인 행태 아닌가?

 

이쯤되면 집회의 순수함과 정당성을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코자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이들을 집회 현장에서 이용해 온 특정 정치 집단의 추악한 모습을 빼닮았다.  굳이 다른 점을 꼽으라면 돈 대신 점수를 무기로 활용했다는 점 정도다.  학교 현장에서의 점수란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의 성공행 특급열차의 급행 티켓을 쥐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기에 이러한 행태는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는 등 적이 문제가 된다.



아무리 스스로의 주장이 떳떳하고 올곧더라도 수단이 그릇된 것이라면 이는 옳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고 그 어느 집단보다 공정해야 할 학교 현장에서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점수를 부여해 가며 집회 참석을 독려하는 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겠노라는 천박한 자본의 속성을 쏙 빼닮지 않았는가?  자사고의 운영 취지가 원래 이러한 속성이라면 진작 없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현재 자사고에 몸을 담고 있는 교육 주체 입장에서 볼 때 자사고의 폐지 논란이 불편하게 와 닿고 또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을 것이란 사실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지극히 비교육적인 수단을 동원한 점에 대해선 그 어떠한 변명도 합리화될 수 없는 노릇이다.   교육자로서의 기본을 망각한 채 파렴치한 행위를 교육 현장에서 몸소 실현하고 있는 그들이 존재하는 한 자사고 폐지에 대한 반대 논리는 이미 설득력을 잃은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자칫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그게 설사 돈이 됐든 점수가 됐든,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는 등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에 이런 방식의 교육을 설파하는 자사고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간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사고에 몸담고 있는 주체들은 왜 서울시민 대부분이 자사고 폐지에 적극 찬성하고 있는지 곰곰이 되짚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이 한길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 참여자의 60.7%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고 있었다.  반대는 22.9%에 불과했다.

 

자사고가 우리 사회에 절대로 사라져선 안 될 만큼 아무리 좋은 학교라 한들 그대로 두었다간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칫 그릇된 영향을 미치고, 또한 우리 사회 전반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줄 개연성이 다분하다.  어쨌든 이번 해프닝은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주체들의 올바르지 못한 수단이 외려 자사고 폐지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증명해 주고 있는 느낌이라 왠지 한 편의 희극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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