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아이들은 항상 옳고 어른들은 틀렸다

새 날 2014. 7. 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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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코딱지만한 정원이 하나 있습니다만, 거의 방치 수준이라 원래 잔디가 깔려있던 곳은 잡초만 무성했고 원칙 없이 마구잡이로 심어진 나무와 풀 따위는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던 그런 찰나였습니다.  이곳에서 서식 중이던 우리집 개 '미르' 녀석만 신나해 하던 공간이었지요. 

 

뭘 보고 있는 겐가 미르군

 

아마도 지난해였지 싶습니다.  잡초 무성하던 곳엔 정원용 흙을 두텁게 깔아 더 이상 잡초가 자랄 수 없게 다듬었으며, 화단 이곳 저곳도 손을 조금씩 봐 제법 화사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하게 됩니다.  애써 가꿔놓은 정원을 망치지 않은 채 유지하기 위해선 이곳에서 자유자재로 천방지축 활동하던 미르(말라뮤트) 녀석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입니다.  가족회의를 열었겠지요?  결국 집 한켠을 미르 전용 공간으로 꾸며 저녁 이후로는 그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평소엔 대문 앞에 놔두고요.

 

그런데 미르가 정원을 손보기 이전 시절엔 비록 아주 넓직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당 전체를 자신의 삶의 터전인 양 마음껏 활용해오던 터였는데, 활동 반경을 전용 공간으로 한정짓게 되다 보니 가뜩이나 덩치가 산 만한 녀석에겐 너무나 좁게만 느껴지는 결과가 돼버린 것입니다.

 

쓰담쓰담해 달라며 자빠링하고 있는 미르군

 

활동량이 워낙 많은 녀석인지라 건강 걱정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라뮤트라는 견종이 생각보단 다리 관절이 약하다는 평이 있던 차였습니다.  하지만 미르를 격리 조치해야 한다는 건 집안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필요악이었지요.  아침부터 대문 앞에 묶인 채 지내다가 저녁 무렵이면 퇴근 시간에 맞춰 자신의 공간으로 돌려보내지는 게 그날 이후 미르의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사실 많이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녀석이 워낙 귀소본능이 약한지라 집밖으로 나가는 날엔 돌아올 줄을 모르기에 탈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목줄은 필수입니다.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여 우리 가족의 애를 먹였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미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는데, 무언가 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겁니다.  정원에 나가 보았지요.  미르가 줄이 풀린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요?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절로 풀렸을 리는 없을 테고 필시 누군가 부러 목줄을 놓아준 것일진대, 그래서 가족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더군요.  일단 목줄을 다시 묶고 들어와 혹시나 해서 막내 아들 녀석을 추궁했습니다.  욘석이 범인이더군요. 

 

헐... 미르 이빨...  개 무서워라~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하루종일 묶여 있는 게 답답해 보여 잠시라도 마음껏 활동하라며 풀어 준 것이랍니다.  엉뚱발랄한 발상이긴 하지만 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여간 기특한 게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짚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막내 아들 녀석은 현재 토끼 한 마리를 5년째 키우고 있는데요.  참고로 토끼 역시 미르를 입양해 왔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들여온 녀석입니다.  처음엔 조그마한 케이지에서 키우다가 답답해할 것 같다며 조금 더 큰 케이지를 직접 자작할 정도로 애지중지해 왔던 터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케이지에 가둔 채 키우면 토끼 녀석이 너무 힘들 거라며 주기적으로 케이지 밖으로 풀어놓아 온 집안을 마음껏 휘저으며 돌아다니도록 만들곤 합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사방 천지엔 토끼똥이 마구 흩뿌려지곤 하지요. -_-;;  그래도 이러한 행동에 대해 특별히 제지하진 않았습니다.  비록 집안이 지저분해진다 해도 아이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였습니다.  조금 더럽혀진 방안은 다시 치우면 그만이니까요.

 

조금 더 있으면 잠잘 기세로구먼

 

결국 미르를 풀어 준 것도 이의 연장선이었던 셈입니다.  어른들은 정원 망가질 일에 대한 걱정만 앞설 뿐 정작 반려동물의 고통스러운 환경에 대한 고려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잖아요?  영화 '신의 한 수'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천재바둑소녀 량량의 원격으로 두는 바둑 수를 보더니 "저건 필시 아이가 두고 있는 거야.  어른들은 절대 아이의 유연성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되뇌이던 출연자의 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어른들의 굳어져버린 사고와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선입견 및 편견은 절대 아이들의 유연함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항상 옳고, 어른들은 언제나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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