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허를 찌르라 '난 말라뮤트다'

새 날 2014. 10. 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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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인은 정말 멍청하다.  내가 그토록 많은 탈출을 시도했고, 그중엔 성공한 적도 제법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고 싶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날도 난 기회만을 엿보았다.  가끔 목줄의 걸쇠가 제대로 잠겨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걸 난 분명히 기억한다.  그래, 난 말라뮤트다.

 

비가 내렸다.  아무리 이중모라 한들 비를 맞는다는 건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모두 별로 달갑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평소 주인이 내게도 비를 피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는 편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주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으니..  천장이 뻥 뚫린 내집으로부터 현관으로 옮겨졌다.  가만히 동태를 살폈다.  혹시나 하며 목줄의 걸쇠를 확인해 본다.  어라?  이게 웬일인가.  풀려있었다.

 

옳거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대자연 속으로의 탈출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난 누군가 대문 밖으로 출입하기만을 바랐다.  물론 줄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몸을 한없이 웅크린 채 기회만을 엿보았다.  그때다.  드디어 인기척이 들려온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틈 사이로 일단 머리를 들이민 채 문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성공이다.  다음이 문제지만, 상관없다.  난 머리를 굴렸다.  그동안 도망가던 경로로는 안 갈 테다.  매번 도망갔다 붙잡히기 일쑤였잖은가.  반대편 경로를 택했다.  쏜살 같이 달렸다.  그래, 난 니들의 달리기 실력으로는 감히 흉내도 못낼 만큼 빠른 말라뮤트다.

 

 

그러고 보니 대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문 밖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주인 아들녀석인 것 같다.  난 콧방귀도 끼지 않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하하 차마 이쪽 방향으로 튈지는 전혀 몰랐겠지?   그래, 난 말라뮤트다.

 

그래서 너희 인간들은 참 단순한 거다.  우리 개들의 지능을 우습게 알고 있지만, 실은 우리 역시 이 정도의 잔꾀는 충분히 부릴 줄 알았던 거다.  골목 밖으로 뛰쳐 나오니 인도가 보이고 차도로는 자동차들이 제법 씽씽 달리고 있었다.  자, 새롭게 열린 세상을 향해 이제 본격 달려볼까?  기다려라 대자연아 내가 니들 품속으로 달려가마.  그래, 난 말라뮤트다.



그때다.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기둥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영역을 표시하고 싶은 본능이 치솟는다.  그래, 이쯤이야 뭐 문제가 되겠는가.  재빨리 표시하고 어서 가자.  난, 대자연이 한없이 반겨할 말라뮤트가 아니던가.

 

그랬다.  난 기둥에다 나의 영역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 아들녀석이 어느샌가 내 앞에 떡 하니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난 순간 당황했다.  치사하게 영역 표시 중에 나타나다니..  헐..  주인 아들 녀석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이런.. 제길슨..  양팔 안에 나를 끼운 채 번쩍 든다.  이 사람이 내 덩치를 잊기라도 한 건가?  어라..  그냥 번쩍 드네? 

 

아뿔싸..  난 꼼짝없이 주인 아들녀석에게 붙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허를 찌른 나의 도주극은 그놈의 영역 표시라는 본능 앞에서 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기다려라 대자연아, 내 언젠간 너의 품으로 반드시 돌아갈 테니..  난 말라뮤트가 아니더냐.   

 

에고에고..  이후로 난 주인을 비롯한 그 떨거지들한테 삼엄한 감시의 눈총을 받게 됐으며, 새삼 목줄의 걸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재차 확인하는 절차까지 생겨났단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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