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개를 키웠는데, 알고 보니 괴수였어

새 날 2014. 8. 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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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35.8도까지 치솟던 날, 시멘트 바닥과 씨름하던 미르

 

미르를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커다란 덩치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란 그 영역에 상관없이 언제나 넘사벽이었듯 미르를 키운 이래 마당에다 큰 개를 풀어놓고 키워보고 싶다는 어릴적 로망은 어느덧 현실 앞에서 균열을 보이며 여지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뭐 그래도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생각만큼 그리 크지 않다.  덩치가 크다고 하여 밥을 유독 더 많이 먹거나 하지는 않는 데다 특별히 미용 따위 할 일도 없기에 오히려 소형견보다 손이 덜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지 비용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문제다.

 

 

미르의 앞발, 이걸로 한 대 맞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물론 말라뮤트의 커다란 덩치가 의외의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긴 하다.  일례로 자신은 반갑다며 두 발로 서서 앞발을 이용, 우리 몸에 반가움을 표시해 오곤 하지만, 갑작스레 당할 때면 그로 인한 충격파가 온몸에 그대로 전달되어 휘청거리게 만들거나 자칫 바닥에 내쳐지게 하는 상황을 빚기도 한다.  노약자들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때 발톱에 긁히는 일도 다반사다.

 

앞발 발바닥, 가끔 반가워하는 동작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녀석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는 포스팅을 지난 번에 남긴 적 있다.  그런데 갇혀 있는 상황이 갑갑해서 그런지 녀석이 언젠가부터 자꾸 이곳을 탈출하려 든다.  입구를 나무로 된 여닫이 문 두 개로 막고 가운데를 묶어 놓은 형태인데, 한 번은 녀석이 우연히 그 틈을 비집고 탈출에 성공한 적이 있다.



이후 그 안에 넣어 놓기만 하면 우리가 보고 있지 않는 사이 탈출 시도가 이뤄졌고, 요령이 생긴 탓인지 그럴 때마다 쉽게 빠져나가곤 했다.  녀석이 평소 하도 치근덕대느라 문은 휘어졌고, 틀이 삐걱 거리며 원형을 잃어가고 있던 터, 어차피 손을 봐야 했다.  나무도막을 몇 개 구해 덧대어 놓아 흔들림이 없도록 고정시켜 놓았다.  나름 신경 써서 보수한 셈이다.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녀석은 집요했다.  몰랐던 사실인데 녀석에겐 한 번 찾은 약점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 있었다.  기껏 수리해 놓은 문짝을 머리와 발로 수차례 들이받더니 결국 또 탈출에 성공한다.  녀석을 너무 얕봤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우린 그저 덩치가 조금 큰 개라고 생각하여 그에 걸맞게 조치해 놓은 뒤 나름 흡족해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한편 녀석의 집이랄 수 있는 공간 뒤쪽으로 또 다른 통로가 있었다.  당연히 이쪽으로 미르가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큰 화분에 돌을 넣거나 벽돌 등으로 장애물을 쌓아 막아 놓았다.  하지만 그곳마저 결국 뚫어 통로를 확보해 놓은 미르였다.  나름 튼튼하게 보강을 했다.  그러나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뚫리고 말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화분 류는 마구 뜯겨져 나가거나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자신의 몸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의 통로가 확보돼 있었다.  마찬가지로 녀석을 너무 얕봤던 결과다. 

 

 

말라뮤트가 썰매를 끄는 견종이기에 힘이 어느 정도 셀 거라는 건 짐작했던 일이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미처 예상 못했다.  특히 먹거리 앞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다.  미르 앞에서 '까까'가 어른거리기라도 하는 날엔 폭발적인 괴력이 나타나는데, 그 힘이 어느 정도냐면 거짓말 조금 보태 현재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태풍급 이상의 위력이다. 

 

결국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녀석이었다.  이런 미르를 보고 있자니, 요즘 내가 과연 개를 키우고 있는 건지, 아니면 괴수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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