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돼가고 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그의 과거 행적으로 비춰볼 때 이번 논란은 당연한 귀결이며, 되레 뭇사람들의 비난과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스스로 사퇴하거나 대통령의 지명 철회 없이 여전히 버티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게만 와 닿을 뿐이다.
난 그의 총리 지명이 이렇게까지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오게 된 데엔 비단 과거 망언뿐 아니라 무언가 결정적인 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얼까? 문창극 후보자는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해당 신문사의 주필을 담당할 때까지 줄곧 같은 언론사에서 활동해온 천상 언론인이다.
그랬던 그에게 비슷한 언론 조직인, 그것도 무려 KBS가 11일 보도를 통해 총리 후보자로서는 절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아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결코 내뱉을 수 없는 자못 심각한 망언이 포함된 강연 장면을 내보내며 파문의 서곡을 열었다. 믿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KBS가 이번 망언 파문의 진원지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결과를 놓고, 최근 해임된 KBS 길영환 사장의 후임으로 문창극 후보자가 내정된 것을 예상한 KBS 노조가 그를 견제하기 위해 집중적인 정보 수집을 통해 이뤄진 결과라고 보도했다. 물론 KBS 노조는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이라며 펄쩍 뛰는 모양새다. 더 나아가 동아일보 측에 해당기사의 정정보도와 수정을 요구했단다.
동아일보가 13일자에 반론 보도를 싣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이는 사실 무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KBS는 왜 그에게 불리한 보도를 감행한 걸까? 평소 KBS는 국정 홍보처와 다름없는 행보를 보여왔고, 특히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의 진실을 외면한 보도 행태로 인해 만인에 의해 지탄의 대상이 돼 왔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 평소대로라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가장 일치하는 인물이라며 문창극 지명자를 한껏 칭송해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사장의 공백 기간만이라도 공명정대한 보도를 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이 대목에서 난 문창극 후보자가 언론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사장이 공석이라지만 KBS는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을 무조건 신봉해 왔던 터였고, 더군다나 같은 언론인이기에 특별한 흠결이 있지 않는 한, 아니 혹여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한들 우호적인 방향으로 무게추가 기울었을 법하다. 일종의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동류 의식 비슷한 그러한 종류 말이다. 솔직히 이러한 심리는 비단 언론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암묵적으로 널리 통용돼오던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던가.
ⓒ뉴시스
그런데 평소 가장 믿음직스럽게(?) 여겨 왔던 KBS가 외려 가장 먼저 고추가루를 뿌렸다? 그것도 지독히도 맵다는 청양 고추로 빻은 고추가루를..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파문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선 연일 최초의 언론계 출신 총리가 탄생한다며 호들갑들 떨지 않았던가. 물론 이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듯싶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자신들과 같은 언론인 출신 총리 후보자를 물 먹인 데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 그게 과연 무얼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런데 아침에 집으로 배달된 모 신문의 지면을 꼼꼼히 살펴보며 난 확신을 갖게 됐다. 1면엔 그의 망언 소식과 함께 총리직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신문은 소위 말하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과는 크게 관련없는 녀석이다.
1면 뿐 아니라 2면과 3면까지 할애해 가며 문창극 후보자의 문제점에 대해 요목조목 상세하게 짚어나가고 있었다. 비록 전날 KBS의 망언 보도가 있었다손쳐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같은 언론인으로서 일정 부분 쉴드를 쳐 주어야 정상일 법한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문창극 후보자는 이 신문사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듯싶었다. 그의 망언을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정서상 도무지 무리란 판단이 선 까닭이었는지 웬만하면 쉴드를 쳐 주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강력한 안티로 돌아섰으니 말이다.
KBS와 이 신문사의 행태를 보며 든 생각은 문창극 후보자가 언론인으로서의 생활을 비록 오래 해왔다지만, 같은 언론인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 과연 제대로된 직업인이었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물론 그가 이제껏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나로선 도무지 알 길 없다는 점이 함정이긴 하다. 다만 같은 언론 조직인 KBS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면, 아울러 여타 언론들이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면, 그동안 써왔던 논평 따위를 굳이 힘들게 들춰보지 않더라도 그는 진정한 언론인의 범주에 들지 못 해왔음이 틀림없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늘 타인과의 관계 형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 받으며 욕구를 충족시키곤 한다. 그런데 문창극 후보자의 경우 같은 언론인들이 스스로 안티 역할을 자처하는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러한 영역에서의 능력 부족 탓에 비슷한 언론인들과의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된다. 즉 평소 주변의 같은 언론인들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한 결과가 오늘날의 사태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은 거다. 물론 여기엔 KBS 사장의 공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맞물려 있다. 이 두 조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미묘한 파장을 결국 거센 물결로 변모시킨 셈이다.
난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하지 않거나 아울러 대통령이 국민 알기를 우습게 여기며 오기를 부려 설사 지명 철회를 하지 않는다 해도 - 실제로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했다는 기사가 실시간으로 뜨기 시작했다, 오호통재라 - 그는 결코 대한민국의 총리가 될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비단 청문회 절차를 통해 걸러지리란 이유 때문이 아니다. 식민사관을 지닌 인물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총리 자리에 앉아 이웃나라 일본 우익들의 열화와 같은 환대를 받게 되는 몰상식한 현상을, 지극히 상식적이며 현명한 우리 국민들이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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