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 한마디에 집까지 배달된 유병언 수배전단

새 날 2014. 6. 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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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건만, 12명의 실종자는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애끓는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이야 이루 다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테다.  그 누구도 그들의 아프고 멍든 가슴을 감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다.  때문에 현재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펼쳐지고 있는 월드컵의 열기가 아무리 뜨겁게 달아오른다 한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에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제 집의 우편함을 열어보니 조금은 낯선 형태의 전단지 한 장이 꽂혀 있었다.  다름 아닌 유병언 씨 일가에 대한 지명수배 전단지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이와 관련한 긴급 반상회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기억이 있다.  짐작컨대, 반상회에서 사용되었을 법한 바로 그 전단지를 행정 관청에서 각 가정마다 배달한 모양이다.

 

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부는 왜 2010년 연평도 포격 이후 처음이라는 전국 단위 반상회를 개최하면서까지 유독 유병언 일가의 검거에 목숨을 걸고 있는 걸까?  '김엄마'니 '신엄마'니 하며 듣도 보도 못한 '엄마 시리즈'까지 양산해낸 정부는 그들의 검거를 위해 모든 경력, 아니 심지어는 병력까지 동원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때문에 일선에서의 치안 공백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이한 현상들은 왜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린 지난 10일 개최됐던 국무회의를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이날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유씨를 아직도 못 잡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은 유병언 씨 일가의 검거를 거듭 촉구하며 유관부서를 향해 제법 강한 톤으로 질타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회의 석상에서 유씨에 대한 검거를 지시한 것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 지난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이어 벌써 세번째다.  그랬다.  이제 대충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결국 조그마한 변두리에 위치한 우리집에까지 유씨 부자의 수배 전단지가 배달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대통령의 질타 한 마디 덕분이었던 셈이다.  황송하게도 대통령의 강력한(?) 파워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전단지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수배된 유병언 씨의 신고 보상금은 잘 알려진 대로 무려 5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유대균 씨의 그것은 1억원이었다.  어마어마한 몸값이다. 

 

그런데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자금 횡령과 안전관리 부실 혐의 여부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라도 유씨 부자를 검거해야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요란법석을 떨어가며 해야 할 만큼 - 모든 공권력이 한 곳에 수렴해가는 기이한 현상 - 그들이 세월호 참사로 인한 300여명의 죽음과 직접 연루된 중범죄자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싶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로 인해 구조에 허점을 보인 사실과 우왕좌왕 대처에 의해 빚어진 참사라는 결과를 놓고 볼 때 정황상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눈속임을 위한 여론 상쇄용 아이템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국민들의 시선을 유병언 씨 일가에게 일시에 쏠리게 하여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 따위 말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같은 범인으로선 절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확한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은 유병언 씨가 됐든 아니면 그 누가 됐든 철저히 캐물어야 한다.  아울러 유병언 씨 부자의 검거는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수사와 원인 규명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유병언 씨 일가를 이용해 교묘히 왜곡시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려 든다면?  이는 300여명의 희생을 통해 얻은 값진 교훈마저 물거품이 되게 할 공산이 크다.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는 과연 유병언 씨 부자를 진짜로 잡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안 잡고 있는 걸까?  의문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볼 때 여전히 헷갈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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