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축된 관광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름휴가 하루 더 가기' 캠페인을 추진키로 했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4 하반기 국내 관광 회복·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각 기업체와 가정으로 하여금 올 여름휴가를 하루 더 가게끔 유도하여 침체된 소비 지출을 늘리고 궁극적으로 경기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발상인 듯싶다.
물론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고 더욱이 가계소비지출마저 늘지 않고 있는 대목에서 터진 세월호 참사는 체감경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여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다.
ⓒ세계일보
우리 경제가 일회성의 캠페인만으로 살아나는 성질의 것이라면 나 역시 이를 백 번이라도 환영한다. 허나 작금의 소비 위축이 비단 세월호 참사 때문이라며 모든 원죄를 세월호에 뒤집어 씌워 이를 단정짓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엿보인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이미 경기지표는 2013년 하반기에 정점을 찍은 뒤 꺾여 다시 바닥을 향해 가고 있던 찰나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이미 고장나 불시착 중이던 비행기에 한 사람을 더 태운 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정부가 이번 캠페인을 계획한 정책적 근거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산업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관광업계의 1일 평균 매출액이 여행업의 경우 61.9%, 숙박업 29.1% 그리고 전시행사는 38.2%가 감소했단다. 예측했던대로 업계의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이러한 결과,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무조건 세월호? 아닐 테다. 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셈이다.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직후 정부는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과 수련회, 체험학습 등을 전면 중단시킨 바 있다. 번지수를 한참이나 잘못 짚은 정부의 융통성 없는 일방통행식 정책 덕분에 가뜩이나 어렵다던 관광 관련 업종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이렇듯 급전직하의 나락으로 떨어진 관광시장을 살려 보겠다고 급조하여 내세운 정책이 다름 아닌 '여름휴가 하루 더 가기 캠페인'일진대, 이는 병주고 약주는 셈이라 그 약 효과를 장담할 수 없을 뿐 더러 가뜩이나 세수 부족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 입장에선 자칫 예산 낭비로 끝날 수도 있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의 융통성 부족한 정책 탓으로 인해 파탄난 관광시장을 국민들 더러 억지 살려내라고 하면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긴 할까? 개인들의 지극히 사적 영역인 휴가마저 정부가 개입하려드는 모양새도 사실 우습다. 하지만 그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부의 시책에 적극 부응코자 휴가를 하루 더 낸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쓸 돈이 없다는 데 있다. 그나마 휴가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체감 경기가 워낙 나빠 대다수의 국민들은 휴가 계획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앞서 그래프에서도 보았듯 작년 하반기 이후 가계의 소비지출 감소세가 눈에 띠게 뚜렷해지고 있는 데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또 다른 그래프를 통해 한 번 살펴보자.
ⓒ서울신문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에 비해 0.5%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다. GNI란 국민이 나라 안팎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의미하며 구매력과 직결되는 지표다. 실질 GNI 증가율은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0.9%포인트에도 크게 못 미치며 간극이 벌어져 - 물론 국내총생산 성장률 역시 터무니 없이 낮다 -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형편 없게 와 닿는 것이며, 따라서 삶이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지표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와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호들갑 떨던 사실이 모두 거짓이라는 게 들통 난 셈이며, 때문에 그러한 사탕발림이 국민들에게 체감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았던 이유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와 상관 없이 경기는 이미 하강 국면으로 깊숙이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가계소비지출이 지금과 같이 형편없는 건 비단 세월호 참사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가 호언장담해왔던 것과 달리 경기가 활력을 보이지는 못한 채 오히려 악화일로를 걸으며 국민 소득이 늘지 않게 된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지갑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것 뿐이다.
이렇듯 실질적인 국민의 삶은 형편없이 팍팍하기만 하고, 추가적인 소비 지출에 여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정부가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마뜩할 리가 없다. 현재 국민들은 휴가 하루를 더 가느냐 안 가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휴가 자체를 갈 수 있느냐 못 가느냐의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적 과오를 오롯이 국민들에게 떠넘기려만 하고 있다.
누군들 휴가를 가고 싶지 않겠는가. 아울러 누군들 하루 더 쉬는 걸 원치 않겠는가. 소득이 줄며 주머니가 가벼워져 휴가를 갈 여력도, 하루를 더 쉴 여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이를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난 부위를 더욱 후벼파고 있는 셈 아닌가. 제발 국민들의 정서와 눈높이에 맞는 정책 펼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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