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선행학습금지법 통과, 사교육 과연 줄어들까?

새 날 2014. 2. 19. 08:16
반응형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열린 2014년도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선행학습과 선행출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선행학습 금지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이기도 하다.

 

선행학습금지법 국회 상임위 통과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과도한 사교육 유발의 빌미로 지목됐던, 일선 학교에서의 선행교육과 학습을 규제하는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이 마침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따라서 해당 법안이 2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될 경우 이르면 8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매일경제

 

사교육 시장에서의 과도한 선행학습 경쟁이 공교육의 선행학습을 부르고, 이는 또 다시 사교육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돼오고 있는 상황을 간파, 사교육 수요의 핵심인 선행학습을 규제하여 이를 잡고 공교육을 정상화의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특단의 조치인 셈이다.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해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는, 결코 웃을 수 만은 없는 얘기가 회자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의 사교육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동안 사교육을 잡겠다며 교육 당국이 각종 정책들을 우후죽순 내놓은 바 있지만, 사교육 업체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때마다 외려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교육 시장을 파고들어 왔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때문에 오죽하면 이런 법안까지 나오게 됐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사실 일선 고등학교에서의 선행학습은 과도할 정도다.  대학 입학이란 지상 과제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비쳐지긴 한다지만, 일례로 수학을 하루에 한 단원씩 끝마쳐야 할 만큼 치열한 경쟁의 놀라운 학습 속도 앞에서 아이들은 혀를 내두르며 지치기 일쑤고,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찾게 만드는 환경 조성을 학교 스스로 해온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심지어는 교사들이 직접 학원 알선을 해줄 정도다.

 

ⓒ조선일보

 

입학하기 전부터 고등학교 2학년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와야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다는 교사의 조언을 듣고 있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며, 때문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학원으로 옮기게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정규교육 과정과 방과 후 학교 과정에서의 선행교육 금지와 이를 유발하는 평가 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해당 법안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될 듯싶다.

 

아울러 대학입시 논술에서 고교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거나 특목고에서의 '이과반', '의대준비반' 등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에 대한 운영 규제도 가능하거니와 사립초등학교에서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행정제재도 가능하게 되어 사교육 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여지,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있겠지 싶다.

 

선행학습금지법, 이래서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안 역시 몇가지 치명적인 미흡함 때문에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사교육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게 와닿는다.  기껏해야 학원 등 사교육 기관에게는 선행학습을 광고하거나 선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만을 담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교육에서의 선행학습 규제가 법안 취지대로 아무리 잘 이뤄진다고 해도 사교육 기관에서는 선전과 광고만 못할 뿐 얼마든 선행학습이 가능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공교육과 사교육은 상호보완관계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작금의 선행학습 문제가 불거지게 된 이유 역시 순전히 둘 사이의 물고 물리는 관계로 인한 악순환 탓이다.  때문에 사교육 기관에 대한 규제가 빠진 건 결국 이번 법안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럴까?  사교육 업계가 조용하다.

 

아울러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애초 선행학습을 왜 선택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잘못 집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학교에서의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를 대비하기 위함이 아닐 테다.  당장 눈 앞의 평가보다는 입시라는 보다 크고 먼 안목을 위해 선행학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입시제도의 틀 정비 없이 커리큘럼과 지필고사에서의 선행을 막겠다는 건 마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것과 진배 없어 보인다.  때문에 입시제도의 근간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학원으로 교습소로 향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학원 등에 대한 선행학습 규제마저 빠져있다는 건 결국 이를 방치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다.

 

ⓒ헤럴드경제

 

선행학습이란, 어떤 주어진 과제의 학습을 위해 미리 습득하고 있어야 할 학습을 의미한다.  수학이나 과학 등 몇몇 특정교과의 경우 이러한 의미의 선행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경우 본래의 학습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개념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는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하여 무조건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외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아울러 학습마저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권에 대한 자칫 심각한 훼손 행위가 될 수 있기에 신중하고 또 다시 신중을 거듭하여 접근해야만 할 테다.

 

사교육을 줄여보겠노라는 충정에서 비롯된 선행학습금지,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나 애초 접근방식부터 잘못된 법안이기에 어쩌면 유리 밑에 깔린 먼지는 정작 없애지 못한 채 겉면만을 줄창 닦고 있는 꼴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설사 올바르게 접근했다손쳐도 결과적으로 사교육 기관에 대한 규제는 풀어놓은 채 공교육에 대한 규제장치만 마련한 것은 결국 이번 법안 역시 선언적 의미 외에 특별할 게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보여주기식 성과 만능 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란 측면도 엿보이기에 해당 법안이 우리 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