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거센 여풍 앞에서 한없이 옹졸해지는 군(軍)

새 날 2014. 2. 2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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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불어오는 거센 여풍(女風)

 

남성만의 영역이라 여겨져왔던 국방 분야에 부는 여풍이 제법 거세다.  지난 1997년 공군사관학교를 필두로 1년 뒤엔 육사가, 다시 1년 뒤엔 해사가 차례로 각각 여학생 입학을 허용한 바 있다.  내년엔 육군3사관학교 또한 이에 가세할 예정이란다.  각 군 사관학교의 여자 신입생 경쟁률이 전체 경쟁률의 두 배에 달할 만큼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학 성적 역시 여학생이 남학생들보다 월등하다.  

 

ⓒ세계일보

 

뿐만 아니다.  공군사관학교의 경우 여학생이 올해 수석 졸업의 영예를 차지한 바 있으며, 육군사관학교 역시 창설 66년만인 지난 2012년 사상 초유의 여자 수석 졸업생을 배출한데 이어 2013년에도 연속하여 여학생이 수석을 차지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영역도 마찬가지다.  여대 중 유일하게 ROTC를 둔 숙명여대와 성신여대 후보생들이 전체 110개에 달하는 대학 ROTC 군사훈련 평가에서 나란히 2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여대 ROTC가 1위 차지하자 평가방식 바꾼 軍

 

그런데 이렇듯 남성 본위의 세계에 뒤늦게 발을 디딘 여성들이 눈에 띠는 두각을 나타내자 우리 군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지난해 하계 시점부터 갑자기 ROTC의 학교별 순위를 없애고 등급제로 평가 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서울신문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군이 밝힌 바와 같이 액면 그대로 정말 운이 없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 공군사관학교에서 벌어진 또 다른 해프닝을 놓고 볼 때 군에서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나거나 해당 사안에만 국한된, 단편적인 성격의 것이 아닌 듯하기에 씁쓸하기 그지없다.

 

공군사관학교 대통령상 수상 번복 해프닝

 

수석 졸업자인 여생도에게 줘야 할 대통령상을 남생도에게 주려다 성차별 논란을 일으켰던 공군사관학교, 20일 학교 측이 이를 번복하며 원래의 수석 졸업 여생도에게 다시 이를 수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공사 측은 번복하기 전까지만해도 이렇게 해명했다.  대통령상은 졸업생도를 대표하기 때문에 성적이나 리더십, 체력검정, 동기생 평가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해야 하고, 공사만의 가치에 우선을 둔 적법한 절차와 기준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뉴시스

 

이랬던 공군사관학교, 남녀차별이라는 여론의 뭇매와 함께 국회의원들의 지적을 받자 결국 수상자를 번복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공사 측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공사 측에서는 학칙에 의한 결과였노라며 일관된 주장을 펴왔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공사 고위 간부 몇몇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 결과를 뒤집은 셈이기 때문이다.

 

거센 여풍이 영 마뜩찮은 우리 군?

 

아무래도 남성 중심의 문화가 굳건한 군 조직 내에서 그를 대표할, 상징성 있는 수상자나 대학의 성별이 여성 내지는 여자대학이 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우리 군의 그릇이 너무도 작은 모양이다.  가뜩이나 최근들어 여성들의 군 진출이 증가한데다가 뚜렷한 성과까지 보이자 견고한 군에서의 남성 우월적 지위가 흔들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며 전전긍긍해하던 찰나였을 테다. 



군의 옹졸하기 그지없는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럴 바에야 무엇하러 여성들에게 군의 문호를 개방한 것일까.  전투를 염두에 둔 군 조직의 특수성은 아무래도 신체적 능력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왔을 터, 하기사 그조차도 여성들이 점차 위협해 들어오고 있는 양상이니 남성들의 자존심이 단단히 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군 조직이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여성이 전투 등 특정 병과에서 최고가 되지 말란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외려 여성성이 장점이 될 수 있다.  군은 여성들의 진입을 꺼려하며 두려워하기보다 여성만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군이여, 옹졸한 짓 좀 그만하자

 

이제 갓 입문한 여대의 학군사관후보생들이 오랜 역사를 지닌 남자 학군사관후보생들을 누르고 연속해서 종합 1위를 차지하자 크게 당황한 나머지 평가방식마저 바꾸는, 극단적인 행태를 보여온 군이다.  물론 서열화에 따른 사기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이며 여대의 ROTC 연속 1위와 등급제로의 전환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군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중앙일보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아무리 뛰어난 객관적인 성과를 보인다 한들, 남성 중심의 군 조직을 대표할 만한 상징성 있는 자리나 역할에서 만큼은 절대 여성들에게 내주기 싫은 군의 기색이 역력하다.  처음 몇 차례는 여성들의 우수한 성적과 성과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마치 군은 남녀차별 따위 없이 여성들에게도 매우 관대한 조직인 양 이를 활용해왔겠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닌 지속적으로 남성들의 자리를 위협해 들어오자 이젠 참을 수 없었던 게 분명하다.  오랜 시간 형성된 견고한 편견과 남성 위주의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뀐다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 너무 치졸해 보인다.

 

이번 해프닝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공군사관학교의 남녀 생도들일 테다.  무엇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평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과 뒤이은 번복,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은 과연 누가 보듬어줄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억지 결정에 의해 상을 받게 된다 한들 과연 축복받는 수상이 될 수 있을까.  애초 상을 받기로 했던 남학생이나 번복으로 상을 받게 된 여학생 모두 씁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테다.  공사 측의 애매한 판정과 번복으로 객관성이 완전히 결여된 평가제도를 앞으로 생도들이 과연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폐쇄된 군 조직의 특수성 속에서 가뜩이나 숫적으로 열세에 놓여져 언제나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 자신들의 능력을 원없이 발휘하며 군의 발전에 이바지함에 있어 차별받는 느낌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 따위 다시는 없도록 군의 보다 섬세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테다.  군은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상 조직 내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외려 멍석을 깔아주어야 한다.  옹졸하며 궁색한 짓 좀 그만했으면 싶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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