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폐지 주우면 '품위'가 없습니까?

새 날 2014. 2. 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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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지난해 600만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12% 이상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향해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며 점차 가속이 붙고 있는 양상이다. 

 

ⓒSBS

 

하지만 노년의 삶은 녹록지가 않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높은 노인 빈곤율이 이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OECD 국가 평균 노인 빈곤율의 무려 4배에 달하는 우리의 노인 빈곤율은 부동의 OECD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49.3%에 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년층이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허락치 않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노년층,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폐지 수집이 그나마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일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을 테다.

 

폐지 수집에 몸 담고 있는 인구가 전국적으로 200만 명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 아마도 그들 중 절대 다수가 노년층 아닐까 싶다.  즉 65세 이상의 노년 인구 가운데 3분의 1 가까운 어르신들이 현재 폐지 수집에 몸을 담으며 오늘도 추위와 교통사고의 위험을 무릅쓴 채 거리로 거리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공단

 

그런데 '국민을 섬기겠다'는 경영방침을 내걸며 국민의 행복한 삶에 공헌하겠노라 호언장담하던 국민연금공단이 폐지 줍는 노인들을 비하하는 듯한 광고 포스터로 지난해에 이어 또 한 차례 물의를 빚고 있다.  광고 공모전을 통해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한 작품 때문이다.  상단엔 폐지를 실은 카트를, 하단엔 여행 가방을 그려 넣어 65세가 될 때 둘 중 어느 손잡이를 잡을 것인지 해당 광고 포스터는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해 품위있는 제2의 인생이 가능하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은연중, 아니 대놓은 채 여유 있게 여행이나 다녀오는 삶에 비해 폐지 줍는 노년의 삶은 무척이나 보잘 것 없으며 초라하기 그지없는 삶으로 낮추어 표현하고 있었다. 



이는 지난해 9월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이 있을 당시 K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나이가 들어서 65세가 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겁니다"라는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의 위원장의 망언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의 한 마디로 인해 기초연금을 받는 모든 어르신들이 졸지에 인생 실패자로 둔갑하는 특단의 효험(?)을 발휘한 바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와 같은 결과는 공모전의 심사에 참여하여 이를 최우수상에 선정한 심사위원들이나 특별한 문제 의식 없이 이를 공표한 국민연금공단이나 모두 그들의 천박한 의식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결과에 다름 아니다.  지니고 있는 재산이 많다면 물론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린 그를 '품위'있는 삶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울러 폐지를 주울 만큼 현재의 삶이 궁핍하며 고단하다고 하여 역시 그를 '품위'없는 삶이라고 단정짓지도 않는다.

 

'품위'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으로서 인격을 갖추는 절대적 가치의 특질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폐지 줍는 노년과 여행 가방을 든 노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때문에 스스로 천박스러운 인격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연금공단은 복지 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 기관이다.  이들의 존립 이유는 바로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같은 복지 혜택 수여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복지에 대한 얕은 의식 수준을 보인 것은 결국 스스로 현재의 직무에 대한 자격이 없음을 내비친 것과 진배 없는 노릇이다.  

 

앞선 통계에서 보듯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게 된 대다수 노년의 삶, 개인적인 무능력 탓이라기보다 국가의 허술한 복지정책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젊어서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며 내집 마련을 위해 온 힘을 쏟았을 테고, 자식들 교육비에 결혼까지 시키느라 허리 휘어가며 그나마 모아 놓은 재산마저 모두 바닥을 드러낸, 시간이 흘러 남은 건 늙어 못쓰게 된 육신 하나뿐, 오늘날 국가 경제 발전에 일조한 이들의 삶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건 결국 국가의 몫이 돼야 할 테다.  이들의 고단한 삶을 펴주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만 한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번 광고 해프닝에 대해 말도 되지 않는 해명을 늘어놓기보다 국민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앞으로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기초연금 받는 어르신들을 비하하거나 폄훼하는 일과 같은 얄팍하며 천박한 수준을 내보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힘든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 복지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함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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