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강기훈' '부림사건' 무죄판결, 살아있는 권력 앞에 공정하라

새 날 2014. 2. 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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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재심 무죄선고

 

13일 매우 반가운 소식 두 가지가 한꺼번에 배달됐다.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신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됐던 부림사건 재심과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이 각각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사건이 있은지 무려 33년과 23년만의 일이다.

 

 

두 사건은 정당하지 않은 국가 폭력이 국민의 삶을 얼마나 파괴시킬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공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폭력과 끔찍한 인권 침해 행위를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며 또한 반드시 승리하리라던 세간의 속설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해 보인 셈이라 더욱 반갑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는 재판부의 온당한 판결이란 상징적인 의미와 억울했던 피해자들에 대해 심정적인 위안을 줄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삶을 물리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사이 강산은 벌써 두번 내지 세번이나 바뀌었다. 

 

폭압적인 정권에 의해 자행됐던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물론 중요하겠지만, 수십년전과 비교해 그다지 변하지 않은 현재의 암울한 상황, 아울러 당시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공안통들이 여전히 권력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너무도 숨 막히게 한다.

 

이들의 억울한 세월, 누가 보상하나

 

새누리당은 재판결과를 존중한다며 강기훈 씨에게 쌓여있던 오랜 불명예의 멍에를 털어버릴 것을 기원한다고 밝혔지만, 이런 말이 그들 입에서 나온다는 자체가 너무도 뻔뻔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만시지탄의 감마저 있다.  23년이란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유서대필 사건이 있던 당시 20대 꽃청년이었던 그는 어느덧 초로의 50대 장년이 되어 있었고, 강 씨의 무죄를 위해 불철주야 애써오던 어머니는 몇 해 전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에겐 돌이킬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또한 33년이란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왔을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강 씨 본인에게 닥친 불행은 더욱 가혹하다 못해 처참하다.  그는 현재 간암 투병 중에 있으며, 2012년 수술 뒤 최근 재발하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한 번 뿐인 인생을 이렇듯 망쳐놓은 상황에 대해 과연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며, 누가 이들의 뒤틀린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걸까. 

 

반대로 해당 사건을 담당하거나 무고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관련자들은 이들의 고통을 전리품 삼은 대가로 그동안 요직을 두루 거쳐오며 떵떵거리고 살아왔을 터다.  우리 사회의 몰상식과 비정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무죄판결은 죽은 권력에 대한 심판

 

부림사건과 유서대필 사건 모두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정권 하에서 자행된,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 중 하나다.  당시엔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의 눈치 때문에, 첨단 과학기법을 동원해 밝혀냈다던 증거마저 조작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던 터,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부가 권력과 한 통속이 되어 그들의 입맛에 맞춰 그릇된 판결을 내리는 일 따위,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삼권분립이란 단어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때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들 군사독재정권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이번 재심은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옳은 방향으로 되돌려 뒤틀린 역사를 올곧게 세웠다는 데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죽은 권력에 대한 심판이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 실체가 없는 권력에 대한 심판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직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의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만이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 그리고 법과 정의를 외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강기훈 씨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사법부의 수장 김기춘 씨는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청와대 비서실장이란 권력의 핵심 요직을 맡고 있다.  공안통으로 악명을 높였던 그가 여전히 권력 실세 행사를 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자 몰상식한 일임에 틀림 없지만 엄연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아울러 2,30년 전과 비교해 현재의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용공이란 이름 하에 자행됐던 권력의 온갖 악행들이 어느새 종북으로 탈바꿈했을 뿐, 여전히 사상검증을 요구하며 국민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실태가 이를 증명한다.

 

김용판 무죄 판결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의 의미는?

 

사법부가 이번 재심 무죄판결의 취지를 살리고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제대로 증명해 보이려면 과거 정권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올바로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정작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의 사사로움 없는 공정하고 깨끗한 판결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 역시 이를 기대하고 있을 테다.

 

 

그러나 현 정권의 정통성을 판가름하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첫 재판이라 할 수 있는 김용판 전 서울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과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태를 빌미로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을 시도하고 있는 면면 등을 볼 때 사법부는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활용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더욱 공정하라

 

80년대의 엄혹했던 사회를 변혁하고자 분신이란 극단의 선택을 통해 정의를 호소했던 청년들, 안타깝게도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 이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지속됐다.  고 김기설 씨도 그러한 현상에 궤를 함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지만, 이의 확산을 두려워한 당시 권력은 강기훈 씨를 희생양 삼아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영화 '변호인'을 통해 우린 부림사건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릇된 국가 폭력 행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할 수 있는지 뼈 저리도록 와닿는 기회가 되었으며, 때마침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판결이 있었던 건 어쩌면 불의로 가득찬 우리 사회에 다시금 경종을 울리는, 우연 아닌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 씨의 소망은 너무도 소박했다.  당시 유죄판결을 내렸던 사법부에게 원망스럽지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해주기만을 바랬다.  물론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은 커녕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자신에게 묻지 말라는 둥 회피성 자세로 일관하며 강 씨의 작은 바램마저 여지없이 뭉개버렸다.

 

이들의 억울한 세월에 대한 보상, 단순한 사과만으로는 어림 없는 일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당시 이들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던 인물들은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테며, 피해자들의 억울한 삶에 대해 작은 위안을 바란다면 과거의 그릇된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사법부가 온당하고 올바른 판결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정의가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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