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4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8대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가기관의 불법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과 수사를 여야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그의 정체성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점입가경에 접어들며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어 촛불정국이란 형태의 블랙홀로 마구 빨려들어가던 당시 안철수 의원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인 양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때문에 그랬던 그의 특검 주장이 다소 생뚱 맞아 보였던 건 엄연한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지난달 23일,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이 공동으로 발의한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헤럴드경제
2013년 세밑이었던 지난달 31일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퇴진과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이남종씨가 분신을 시도,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채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이튿날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빈소는 그가 입원 중이던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에 마련되었고, 민주당 문재인 의원 등이 이곳을 찾아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영결식은 1월 4일 오전 서울역에서 엄수됐으며, 이후 고향인 광주로 운구되어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치른 뒤 망월동 민주묘역에 안장됐다.
ⓒ머니투데이
한편 고 이남종 씨의 빈소가 마련되었던 여의도 한강성심병원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여의도 성모병원에는 지난 2일 오전 급환으로 별세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의 빈소가 마련되어졌고, 지난 3일 안철수 의원이 이곳을 찾았다. 안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해당 법안을 직접 발의한 사람으로서 정작 특검 요구를 주장하며 장렬히 산화한 고 이남종 씨 빈소를, 그것도 지척에 위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본인의 판단이 가장 우선이니 이를 존중해 주어야 할 테고, 또한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라도 충분히 참석하지 못했을 수는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들과 야권에서 고 이남종 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하고 있던 마당에 안 의원의 불참은, 지난 1일 국립현충원을 찾아 고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했던 일과 묘하게 오버랩되어지며, 그렇다고 하여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코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이 보다 솔직한 심경일 테다.
윤여준의 안철수 진영 재합류
한편 한때 안 의원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즈음 둘의 사이가 멀어지며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안 의원의 신당 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추진위원회는 5일 윤여준 전 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윤여준 전 장관이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워낙 이곳 저곳 철새처럼 떠돌아다녔던 인물이기에 지금과 같은 결정 역시 그라면 충분히 가능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 의원의 경우 삼고초려의 대상이 왜 하필 이 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사 여전한 안 의원의 야권과 여권에 걸쳐져 있는 모호한 행보가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마구 뒤섞어온 윤여준 씨와의 찰떡궁합적 측면이 엿보이긴 한다. 결국 윤 전 장관의 여권과 야권을 아우르는, 아무나 쉽게 체득할 수 없는, 그 분만의 독특한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노련한 정략과 전술 등에 기대어볼 심산인 것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안 의원의 선택을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진영 논리에 갇힌 시각으로는 윤 전 장관, 분명 이도 저도 아닌 철새와 같은 기회주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물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안 의원 자신에게 부족한 경험과 여권 야권 어느 한 방향으로의 치우침 없이 양쪽의 특성을 고루 갖춘, 윤 전 장관 나름의 탁월한 정보력을 이용, 안 의원이 펼치고자 하는 정치적 실험에 어쩌면 진짜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역할이 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에서 언급한 안 의원의 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참배와 고 이남종 씨 조문 행보, 외양으로 드러난 면면만으로는 씁쓸한 속내를 감추긴 어렵지만, 중도와 일부 보수층을 끌어안아야 하는 그의 정치적 포지션을 놓고 봤을 때 결코 나쁜 선택만은 아닐 듯싶으며, 한편으론 매우 쿨한 측면도 엿보인다.
안철수식 새정치, 그 실체는?
안 의원 앞엔 여전히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신당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물론 뚜렷하지 않은 색깔 그 자체가 어쩌면 안 의원이 표방하는 정치력의 전부이자 고유의 색일지도 모른다. 진영논리에 심하게 매몰되어 있는 작금의 우리사회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득이 될런지 독이 될런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떄문에 안 의원의 행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실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여준 씨의 재합류설이 파다하게 퍼지자마자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 사전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양 안 의원을 향한 비난의 십자포화를 일제히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서 아직 그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안 의원의 신당이 민주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새누리당을 맹추격하는 모양새를 보인지라 이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이다.
그러나 안 의원의 지지자라고 하여 마냥 그의 판단과 행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박수치고 밀어주기엔 이제껏 그가 보여온 행보가 사실 많이 미심쩍다. 무조건 믿어주기엔 당면한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새정치'란 형태가 여권과 야권 모두를 비난하는, 양비론적 성격은 분명 아닐 게다. 그렇지만 사실 그동안 그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그게 전부였던 듯싶다.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며 본격 세몰이에 나선 안철수 의원, 이제 본격 새정치 보따리를 국민들 앞에 풀어보여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 보따리에 들어 있는 것이 진정 국민들이 바라던 새로운 정치의 형태라면 안철수 신당은 안착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을 테고, 그 반대로 기대와는 달리 별 볼일 없는 형태의 것이라면 우리 사회에 한동안 불었던 안철수 바람은 쉽게 꺼져버릴 공산이 크다. 따라서 안철수가 과연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세력이 될 수 있을지의 여부, 곧 뚜껑이 열리며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테다. 이번 윤여준 전 장관의 영입이 그에 대한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되리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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