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초에 벌어진 안타까운 두 죽음의 상관관계

새 날 2014. 1. 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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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마지막날이었던 12월 31일,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분신을 시도했던 이모씨가 해를 넘긴 다음날, 그러니까 2014년 정초, 끝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분신 사망 이씨에 대한 폄훼 움직임

 

그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서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내던지는 행위만은 절대 없어져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가 이를 방조한 셈이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말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듯 한 시민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도 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폄훼하려 하거나 단순한 가십거리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사망한 이씨는 분신하기 직전 그가 주장하던 내용의 글을 펼침막에 적어 고가도로 난간 위에 펼쳐놓은 채 확성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목청껏 외쳤고, 그가 남긴 메모장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형식을 빌린 유서가 남겨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경찰과 일부 언론이 그의 분신 이유를 엉뚱한 쪽으로 몰고가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부분이다.  우선 경찰은 사망한 이씨 유족의 말을 빌어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개인 빚 탓인 양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춰 수사를 진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씨가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했다"는 유족 진술이 그 근거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들은 더욱 가관이다.  숨진 이씨가 표면상으론 박근혜 퇴진과 안녕들하십니까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엔 결국 빚과 보험 등 돈 문제가 얽혀있는 것처럼 기사 제목과 내용들을 채우고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며 분신을 시도했건만 그보단 마치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 양 전가의 보도인 '충격'이란 표현까지 사용해가며 이씨의 죽음을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그의 죽음을 폄훼하려는 이유

 

그들이 이렇듯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서도 이를 폄훼하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하는 치졸한 행태를 벌이고 있는 이유, 너무도 자명하다.  우선 최근 철도노조 파업 등의 굵직한 현안들로 인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성토와 국민적 저항이 수면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양상이라 이번 이씨의 분신 사건이 자칫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일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이를 애초부터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는 현 정권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의 발로다.  일부 언론들이야 진작부터 언론의 사회적 기본 책무인 공정성을 잃은 채 여권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터라 실은 특별한 감흥조차 없다.  다만,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경찰마저 균형 감각을 잃은 채 앞장서서 권력에 꼬리치며 아부하는 모습은 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너무 불편하게 한다.  비단 이씨의 분신 사건만이 아니다.



철도노조 파업 사태 당시 수배자들의 체포를 위해 지나칠 정도의 과잉 대응으로 일관해 왔던 데다 파업 중단 선언을 하고 경찰에 스스로 자수한 조합원들조차 정상 참작 없이 무조건 체포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야만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했고 또 불법파업엔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던 대통령의 발언을 의식한 듯 그대로 따르는 양상이다.  파업 조합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나 파렴치범도 아니고 게다가 파업을 중단하고 스스로 찾아와 자수한 사람에게까지 정상 참작의 여지 없이 무조건적인 체포와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일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치다. 

 

공권력의 과잉 충성은 시민에게 흉기가 되어 돌아온다

 

아울러 공권력이 철도노조 파업 및 민주노총의 집회 시위 대응을 위한 사안에 총력 투입되어 정작 시민들의 치안 부재에 따른 민생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일선 경찰 지구대에서는 112 신고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르는 후유증은 새해 정초부터 과로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일선 경찰관의 돌연사로 이어졌고, 시민들은 신고를 해도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경찰력 때문에 폭행이나 강도, 강간 등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했다. 

 

공권력이 권력에 과잉 충성할 때 국민들에겐 되레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을 시도하다 사망한 이씨의 죽음을 마치 투사라도 되는 양 과대 포장하는 행위나 그의 죽음을 또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그의 죽음을 폄훼하려는 시도 또한 중단되어야 한다.  외려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해 나가야만 할 테다.

 

이찌 되었든 이씨의 분신 사망이나 한 경찰관의 돌연사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듯 별개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가 낳은 병폐와 모순의 집합체이자 결과물로서 작금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상황을 통해 맞닿아 있으며, 이를 유발한 모든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이유이다.

 

새해엔 제발 혼란보다는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음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끝으로 새해 정초 같은 날 사망하신 두 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그곳에선 아픔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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