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얼치기 도시인의 얼렁뚱땅 고구마 캐기 체험

새 날 2012. 10. 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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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한 주민 단체가 지역 봉사를 명목으로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텃밭 한 뙈기를 얻어 고구마를 심어 놓았었지요. 더 추워져 서리라도 내리게 된다면 1년간의 노력이 모두 허당이 될 터... 단체원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국 이번 주말에 수확하기로 결정하였답니다. 참가 가능한 인원을 조사하여 팀을 둘로 나누어야 했어요. 결정된 두 팀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나누어 가동하기로 하였구요.

 

이제껏 살아오며 농사와 관련된 일이라곤 농활에 참가하여 벼베기해 본 것이 전부인 저, 제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긴 하지만, 도회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공통된 핸디캡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렇듯 논일이나 밭일 경험이라곤 일천한 서울 촌놈이 고구마 캐기에 참가하기로 하였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변분들에게 민폐만 끼칠 듯한데... 어쨌든 사정상 1팀에 소속된 전 19일(금) 아침 일찍 서둘러 모임장소로 나갔어요.

비록 가을 햇살이라 하지만, 아직은 햇볕이 따갑지요. 하루종일 밭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하니 복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뭐 자주 해 온 일이었다면 복장 등의 준비도 자연스럽고 수월할 텐데...

우선 여행갈 때 쓰던 챙 넓은 모자를 준비했네요. 이 녀석이면 최소한 눈높이까지는 그늘을 만들어 줄 테지요. 그 아래의 피부 보호를 위해 자전거 주행시 사용하던 버프를 뒤집어 썼습니다. 일단 얼굴은 철벽방어가 될 듯....

미끄럽지 말라고 손바닥 부분에 빨간색으로 실리콘 처리된 목장갑을 현장에서 지급 받아 손에 끼었구요. 오른손엔 메인 무기라 할 수 있는 호미를 들었어요. 호미는 사실 이날 생전 처음 손에 쥐어 보았네요. 부끄부끄... 자 이쯤되면 완전 무장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진으로 올리면야 좋겠지만, 혐짤 내켜하실 분들은 없을 듯하여 걍 그림으로 대체해 봅니다. 뭐 폼은 제대로인데 과연 모양새만큼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을런지....

캐는 방법에 대해 약간의 교육을 받고 본격 캐기에 돌입했습니다. 밖으로 삐져나온 고구마순 주변을 사방으로 파내어 잘 흔들며 끄집어내면 된다고 하더군요. 특히 고구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호미질에 주의해 줄것을 당부 받았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상처가 생기거나 부러진 고구마는 상품성에서 낙제점이니까요.

 

 

고구마순 주변부를 호미로 파내었더니 고구마가 삐죽 얼굴을 내미네요.

 

 

이런 식으로 몇 군데를 파헤쳤더니 벌써 이만큼의 고구마가 줄줄이... 그런데 그 크기가 장난 아니었어요. 제 팔뚝만 한 놈들이 수두룩... 저리 큰 녀석들의 맛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한 개씩을 칼로 껍질을 벗겨내어 맛을 보았습니다. 밍밍하네요. 그나마 호박고구마가 좀 더 찰지군요. 원래 바로 캐내어 먹으면 맛이 없으며, 며칠 묵혔다 먹어야 제 맛이 나온다는 말씀을 누군가 하시더군요.

 

 

그런데 호미로 하는 작업은 상당히 더뎠습니다. 땀도 많이 흘려 갈증이 심했어요. 아니 그냥 전부 호미로만 했을 때는 잘 몰랐었지요. 2인 1조의 삽을 이용한 작업팀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삽팀은 순식간에 고구마들을 흙과 함께 뿌리째 밖으로 끄집어 내는 괴력을 과시했어요. 삽과 호미를 굳이 무기로 비교해 보자면, 탱크와 소총 쯤 되겠군요. 호미를 든 이들은 바로 버로우....

뭐 그래도 꽤 열심히들 했으니 땀도 많이 흘렸겠고... 잠깐의 휴식과 새참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땀 배출로 인한 갈증은 한 잔의 막걸리로 해결할 수 있었어요. 고단한 농사일엔 역시 막걸리가 적절한 기름칠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ㅎ

 

 

수려한 북한산 자락이 앞에 펼쳐져 있는 이곳에도 주변이 온통 온갖 색의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잠시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자,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본격 고구마 캐기는 탁월한 성능의 삽팀이 전담하였고, 나머지 분들은 각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게 되었답니다. 생각보다 잔일이 많이 필요했어요. 캐낸 고구마를 분류하는 일과 규격화된 상자에 담는 일, 상자 조립, 나르기 등등...

 

 

어느덧 작업은 마무리되어 가는군요. 오늘 수확한 고구마들은 10킬로 들이 상자에 담아 테이핑 처리하여 모두 상품화하였어요.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따로 모으고....

 

 

오늘 저희가 작업한 밭입니다.

 

 

저 뒤로는 다음날 작업할 분량을 남겨 놓고.... 물론 시간상으로나, 체력적으로 더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히 있었지만, 저희가 다 해버리면 다음날 작업하실 분들이 너무 심심해하며 실망하실까봐 적당 분량 정도는 남겨 놓는 배려....

너무 뻔한 멘트라 쓰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하니... 고구마, 정말 쉽게 생각하며 먹었지만, 앞으로는 제 입에 들어올 때까지의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고되고 험난한 작업 끝에 얻어지는 맛, 말 그대로 값진 일인 것 같습니다. 서울 촌녀석이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함께 작업하신 분들께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었을 것 같네요.

저 쌓인 고구마 박스 중 한 박스는 의무적으로 구입해서 먹어야 한답니다. 과연 맛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군요. 아니 사실 맛이 없다 하더라도 제 땀이 조금은 섞인 것이니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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