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너무도 불친절한 정부의 무선전화기 사용금지 안내

새 날 2013. 10. 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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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여전히 한 세트씩 있을 법한, 본체와 수화기 사이에 코드 없이 무선으로 음성 통화를 가능케 한, 900㎒ 주파수 무선전화기가 2개월 여 뒤인 2014년 1월 1일이면 사용 금지된다고 한다. 

 

아날로그 무선전화기 받기만 해도 과태료?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사용 금지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만약 이후에도 해당 무선전화기를 계속 사용할 경우 과태료나 이용중지 명령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며,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기만 해도 자칫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지난 2006년 10월 관련 고시가 개정되면서 정해진 것이라 한다.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안테나가 밖으로 나와 있거나, 2006년 12월 31일 이전에 구입한 무선전화기는 900㎒ 주파수 대역을 사용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해당 제품들은 아직도 버젓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국내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이 여러 종류의 900㎒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를 여전히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당장 이들에 대한 판매부터 중단시킴이 옳다고 본다.

 

한편 금지된 무선전화기의 사용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황당하지만, 사용 금지 이유는 우리를 더욱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KT가 LTE 서비스를 위해 할당받은 주파수가 900㎒인데, 해당 무선전화기를 사용하게 되면 같은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간섭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그렇단다.  결국 KT라는 한 기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멀쩡히 사용해 오던 무선전화기를 그냥 버리라는 뜻?

 

무선전화기, 과거 한때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10년전인 2003년도부터 시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웬만한 가정과 사무실 등엔 무선전화기가 적어도 한 대씩은 설치되었을 테고, 고장이 나서 버려지지 않은 이상 여전히 사용돼 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집 무선전화기도 얼마전까지 잘 사용해오다 최근 고장이 나는 바람에 현재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황이긴 하다.  현재의 추산으론 아직도 10만대 이상의 무선전화기가 실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대국민 홍보 전략, 이대로 괜찮은가

 

미래창조과학부 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이렇듯 우리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사안을 대대적인 홍보나 캠페인 과정 없이 최근에 들어서야, 그것도 미래창조과학부 홈페이지 한 구석에 조그만 배너 하나 걸어놓은 형태로 알리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만약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혹시 정책 당국은 정부가 고시하는 각종 법령이나 고지 등을 모든 국민들이 스스로 쫓아다니며 꼼꼼이 읽고 또 일일이 확인하고 있노라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우리 국민들이 워낙 스마트하기에 2006년에 고시된 내용 또한 모두가 기억해내고 알아서들 대비하리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틀림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듯 중요한 사안을 불과 3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무슨 배짱으로 이처럼 홍보하는 시늉만 살짝 낼 수 있는 걸까.

 

ⓒ엑스포츠뉴스

 

이제 약 2개월 뒤면 멀쩡히 잘 사용해 오던 기존 무선전화기의 사용자들은 졸지에 다른 전화기로 모두 바꿔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오래된 사용자들도 제품이 멀쩡한 이상 교체하는 데에 따르는 추가 비용이 부담스럽게 와닿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여전히 시중에서 판매중인 해당 전화기를 최근에서야 구입한 사용자라면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껄끄러운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용한 홍보 전략을?

 

정부는 법이 바뀌었다며 무조건 이를 따르라고 국민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친절하지도 않다는 데에 있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에 대한 배려는 털끝 만큼도 없이 오로지 기업 편의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노라는 의미이다.  KT라는 거대 통신 기업을 위해 아직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는 전화기를 모두 자비 들여 교체하라며 협박하는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건 뭐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불과 2개월 정도 남은 시한, 정부가 지금처럼 안이한 방식의 홍보에 주력하는 건 일종의 책임 방기다.  아울러 정책 당국의 허술한 홍보 활동으로 인해 최악의 경우 수많은 국민들을 자칫 대거 범법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10만명 이상의 사용자는 적지 않은 숫자다.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화기마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설득시켜 혼란과 무리수가 뒤따르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적극적인 홍보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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