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죽음과 직면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힘 있게 살고 후회 없이 떠난다'

새 날 2018. 6. 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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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서는 인기 배우 사토 타케루가 시한부 삶의 주인공인 '나'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나는 생명 연장을 대가로 세상에 존재하는 특정 물건, 이를테면 고양이 따위, 그리고 그와 얽힌 관계 등 모든 것들을 이 세상에서 한꺼번에 사라지게 하는 특이한 현상을 몸소 체험하면서 삶이란 무엇이고,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은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묵묵히 깨닫는다. 


이렇듯 시한부 삶은 다분히 극적인 요소를 띠고 있는 까닭에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장르에서 단골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이 책 '힘 있게 살고 후회 없이 떠난다'의 저자 고바야시 구니오 역시 간질성 폐렴이라는 진행성 난치병을 진단 받고 빠르면 2년 반 안에 죽을 수 있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 비슷한 인생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 이는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저자 또한 극도의 혼란과 충격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해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나 소설속 이야기들은 죄다 허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자신에게 당장 다가온 현실은 엄연히 실화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시한부 삶을 통보 받은 사람들은 그에 따른 충격을 각기 다른 양태로 발현시키곤 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나는 삶을 하루씩 연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사물이나 관계를 이 세상에서 하나씩 사라지게 하여 이전에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 깨달아간다. 



마찬가지로 여고생의 시한부 삶을 그린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주인공 사쿠라(하마베 미나미)는 짧디짧은 여생을 밝은 에너지로 승화시켜 오히려 같은 반 친구인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그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까? 그는 나름의 독특한 카드를 꺼내든다. 글을 쓰는 방식으로 이를 이겨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절규하고 싶은 심경, 분노로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적어도 손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댄 채 좀처럼 믿기 어려운 현실을 애써 지우기 위해, 그리고 충격으로 인해 완전히 흐트러진 정신적인 균형 감각을 되찾고, 어느덧 엄습해 오는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오로지 펜 하나만을 들기로 작정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현실을 피해가기 보다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가고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은 물론이거니와 죽는 일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처지에서 그나마 생의 마감 시기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데다가 그와 관련하여 별도의 정리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사실은 그에겐 대단한 행운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죽음의 시기를 사전에 인지한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상당히 거북하게 다가오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자신의 죽음을 사전에 인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니 그동안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정리가 가능하다는 사실만큼은 엄연히 장점인 대목이 아닐까 싶다.


감정에 서투른 탓에 그와 관련한 문제를 두루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과 제안에 나선 '서툰 감정'의 저자 일자 샌드는, 감정으로 인한 모든 갈등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들을 바꾸려고 애쓰는 삶의 패턴에 갇혀 있거나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그저 울면서 탄식만 늘어놓고, 아울러 부적절한 사고의 습관에 갇힌 채 불필요한 갈등을 겪기 때문이라며 일침을 놓는다. 


그녀의 주장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려고 애써 힘을 쏟으며 이로부터 분노를 느끼거나 좌절감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이 책의 주제인 죽음과 관련해서는, 이를테면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 것과 같이, 실제로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분명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충격과 혼돈에 짓눌린 채 어쩔 줄 몰라해 하거나 몸부림치기 일쑤이니 왜 아닐까 싶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삶의 태도는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할까? 



문득 유대인으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의학 이론의 대가 빅터 프랑클이 주창했던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세 가지 가치 가운데 세번째 가치가 떠오른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창조적 가치, 경험적 가치, 태도적 가치 등 세 가지를 주창한 바 있다. 그 중 여기에서 언급할 태도적 가치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했을 때 그 운명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한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맞닥뜨리게 될 실패와 좌절, 이별과 상실, 병과 죽음 등과 관련하여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의연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시한부 선고는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범주이기에 이에 긍정적이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남은 삶을 차분히 정리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통해 분노 및 좌절로 인해 널뛰기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라는 일종의 충고다. 즉, 놓아야 할 건 빨리 놓아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삶의 태도는 일자 샌드와 빅터 프랑클이 주장하던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저자가 지향하는 삶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사쿠라가 관객들에게 넌지시 건네던 그 긍정적인 메시지를 쏙 빼닮았다. 즉, 이 책을 통해 그가 직면하게 된 죽음을 후회, 눈물, 분노, 좌절,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빅터 프랑클의 태도적 가치에서 요구되는 수용의 자세 그대로 오로지 삶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는 데 자신의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죽음과 직면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간접 체험해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저자  고바야시 구니오

역자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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