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어떡하든 이어가야 하는 삶 '오직 두 사람'

새 날 2018. 7. 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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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글은 담백하다. 군더더기 따위는 일절 없다. 난해하지도 않다. 멋을 부리지 않은 것 같은데도 글이 맛깔스럽다. 그래서 잘 읽힌다. 진정한 고수 아닐까 싶다. 결코 못 쓴 글이 아님에도 누구나 쉽게 읽히도록 글을 쓴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엉뚱한 상상력을 끌어들여 이상한 결말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김영하식 작품의 백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 역시 이런 걸 기대하면서 자꾸만 그의 글을 찾아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책 ‘오직 두 사람’ 역시 앞서 언급한 김영하식 글쓰기의 전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집이다. 총 7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져 있다. 무려 7년 동안 집필한 작품들이란다. 눈에 띄는 지점은 그의 집필 기간 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증유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김영하 작가 역시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까닭인지 관련 흔적들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어떡하든 이어가야 하는 삶


‘오직 두 사람’ 속 딸과 아빠의 관계는 조금은 특이하다. 여느 부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딸의 삶을 희한한 방식으로 옭아매고 있다. 덕분에 성인이 된 뒤에도 딸은 자신의 모든 걸, 일거수일투족까지, 아버지의 삶에 끼워 맞춰야 했다. 딸은 이러한 방식만이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런 그녀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만류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신의 장난’은 설핏 디스토피아를 떠오르게 한다. 모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광고를 보고 온 네 명의 청년들, 이들은 채용 과정으로 알려진 이른바 ‘방 탈출 게임’ 속 환경으로 내던져진다. 하지만 이들이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갇힌 방으로부터 빠져나오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듯싶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작금의 상황이 단순한 게임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던 영화 ‘더 시그널’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평생을 아빠에 의해 길들여진 삶, 독립변인인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 의존한 채 삶을 이어가던 종속변인인 딸은 단 한 차례도 살아보지 못한 환경 속으로 내던져진다. 아울러 각자의 방식으로 방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던 네 사람은 합심하여 재도전해보지만 그들 앞에 닥친 운명은 갈수록 꼬여갈 뿐 그리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 속으로 던져진 딸과 네 사람, 각기 다른 시간 및 공간적 배경 속 이야기이지만, 어떤 처지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건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숙명 같은 게 아닐까?




 문학을 통해 투영된 사회 현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사회에 무수한 생채기를 남긴 날이다. 이날 벌어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집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아이를 찾습니다’에서는 11년 전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한 가정이 어떻게 풍비박산나는가를 세밀히 묘사하고 있으며, 우여곡절 끝에 아들 석민이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변을 배회하던 불행한 기운은 이들 가정을 향해 움직이던 검은 손길을 끝내 거둬들이지 않는다. 


수년 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현실을 반영한 유행어 하나가 있다. 바로 ‘헬조선’이다. n포족이라 불릴 정도로 청년들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데,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거나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되레 청년들의 아픈 곳을 재차 후벼 파곤 했다. 어려운 현실도 현실이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을 꿈꿀 수 없다는 게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웠을 법하다. 이러한 처지를 자조적 표현인 ‘헬조선’ 속에 고스란히 녹여놓은 것이다. ‘신의 장난’은 방에 갇혀 모든 희망을 잃은 채 오로지 탈출만을 꿈꿔야 하는 네 명의 청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세월호를 잃어버린 아이에, 아울러 헬조선을 방 탈출 게임에 빗대어 사회적 현상을 문학 안에서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학의 본질


‘옥수수와 나’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문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래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비로소 도달하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다” 


비록 주인공이 가볍게 내뱉은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김영하식 소설의 정수가 바로 이 문장 하나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는 ‘오직 두 사람’에서 딸이 아빠의 죽음 이후 “이 사회가 정해놓은 절차대로 착착 진행되더군요” 라며 차분히 말하던 표현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즉, 문학이 만약 딸의 표현처럼 어떤 정해진 틀에 의해 그대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진부했겠는가. 비록 소설 속 희극적 표현에 불과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지닌 본질 아닐까 싶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무언가 결핍이 있을 것 같은 데다가 정체 모를 불안감 따위를 안고 있는 현대인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지독한 모순들을 이리저리 토해낸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안타까우며 씁쓸하다. 이렇듯 문학이란 원래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과 긴 여운을 안겨주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 책의 말미 ‘작가의 말’ 코너를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학에 어떤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언어의 그물로 엮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문학은 혼란으로 가득한 불가역적인 우리 인생에 어떤 반환의 좌표 같은 것을 제공해줍니다. 문학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독자 앞에 불려오고, 지금 쓰인 어떤 글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예감합니다.”


인간과 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력, 그리고 미증유의 사회적 현상들을 소설 속에 투영시켜 미래를 예감케 하고, 때로는 가려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안내해온 덕분에 우리는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끼고 엷은 미소를 짓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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