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위로가 절실한 수많은 A들을 위한 영화 '여중생A'

새 날 2018. 6. 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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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래(김환희)는 또래 친구가 하나도 없는 처지이다. 덕분에 학교 생활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학우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괴롭힘부터 아예 대놓고 가해지는 가혹 행위까지, 그녀를 둘러싼 학교라는 울타리의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감싸 안고 보듬어줄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 역시 늘 술에 절은 채 폭력을 일삼는 아빠와 맞벌이에 치여 미처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바쁜 엄마로 인해 되레 불안한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환경에서 미래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온라인 공간이었다. 적어도 게임속 가상 공간에서 길드원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때만큼은 어떠한 고통이나 따돌림도 없었으며, 되레 한 사람의 인격체이자 주체로서 온전하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 미래를 매혹시켰다. 미래는 글쓰기를 좋아했으며, 다행히 재능도 뛰어났다. 이는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해주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 중이던 태양(유재상), 그리고 학급에서 반장을 맡고 있는 백합(정다빈)과 우연한 기회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명 웹툰이 이 작품의 원작이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가정에서는 무관심과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중생 장미래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나가면서 한층 성숙해진다는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레이디 버드' 역시 한 여고생의 성장기를 담고 있어 일견 비슷한 장르로 판단되지만,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사뭇 다르고 성격도 판이해 극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중생A'속 주인공 미래는 왕따에, 가정 폭력이라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녀를 보듬어줄 만한 어른이 없어 무관심에 의해 한계 밖으로 내처진 여중생이며,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레이디 버드는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까닭에 자신에게 처해진 여건, 즉 새크라멘토라는 작은 동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뉴욕처럼 큰 도시에서 생활하고 싶은 천방지축의 꿈 많은 소녀다. 이 영화는 그녀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미래 주변의 어른들, 즉 부모님과 교사 등은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었다. 백합의 아빠는 오로지 그녀의 성적에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 백합의 꿈이 아닌 자신의 바람을 자녀를 통해 투영시키는 전형적인 오늘날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를 향한 아빠의 언어 및 주취 폭력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담임 교사(이종혁)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기존에 형성돼 있던 질서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난에 유독 관심을 갖고 그에 몰두하는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며, 어른들의 속물 근성을 고스란히 들킨 듯싶어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만든다.


가정환경이 미래의 그것보다 월등한 데다가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학급 회장을 도맡아 하는 백합(정다빈)과 미래의 소설 공모전을 놓고 벌이는 표절 갈등에서 드러난 교사의 부적절한 행동은 가뜩이나 힘겨워하던 미래를 보듬어주기는커녕 되레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기폭제가 되게 한다. 미래가 처한 현실, 미래의 다급한 현안조차 이해하지 못 하는 아빠는 그저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게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미래가 술에 취한 아빠에게 이유 없이 두드려 맞으면서 자신의 생일인데 천 원만 주면 안 되겠냐며 울부짖던 모습은 비록 허구이지만 너무도 안쓰러워 나라도 그녀를 보듬은 채 꼭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미래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그녀는 미증유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왜 아니겠는가. 다행히 함께 게임에 참여하던 길드원들 가운데 화니(김준면)는 미래와 연이 계속 닿으면서 그녀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특급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미래는 그맘때 또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소녀다. 다만 내향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낯설어 하고 힘들어 하던 터다. 집단 따돌림의 시작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짐작컨대 이러한 미래의 성격이 끊을 수 있는 약한 고리로 인식되어 또래들로부터 집요한 괴롭힘으로 이어지도록 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미래는 적어도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소녀다. 



그나마 어렵게 맺어진 친구들과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거나 간격이 다시 벌어지게 되고, 교사는 진실을 파헤치려 하기보다 오직 당장의 곤란한 처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회유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그녀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전히 관심조차 없다. 더구나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 역할을 하던 게임 서비스마저 중단되자 미래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고 만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주변에 슬퍼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처럼 끔찍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는 미래가 당장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다. 궁지로 내몰린 처지에서 자신을 보듬어주는 이 하나 없다는 건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이 가녀린 소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소녀를 이런 혹독한 처지로 자꾸만 내몰고 있는 것일까?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 이 부조리한 현실이 영화 속에서는 담임 교사가 애지중지 키우는 난의 형태로 묘사된다. 난이 아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음은 반대로 미래 같은 아이들에게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픔을 겪으며 남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미래가 창작한 소설속 등장인물들 가운데 아무도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도록 미래의 세심한 배려가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듯이 미래가 담임교사로부터 난을 빼앗아 든 채 질주하던 모습은 어른들 세계를 감싸고 있는 그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부조리한 모순을 깨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또 다른 A들의 안쓰러운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미래야, 슬플 땐 울어도 좋으니 참지 말고 그냥 마음껏 울어버리자. 


이 시대 위로가 절실한 수많은 A들을 위한 영화이자 A가 아닌 이들에게도 가슴 따뜻하게 다가올 포근한 영화다.



감독  이경섭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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