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름다움 이면의 치명적인 예리함 '단델라이언'

새 날 2018. 6. 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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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져 버려진 폐목장의 사일로 안에서 어느 날 엽기적인 형태로 사망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의 신원 조회 결과 죽은 여성은 16년 전 실종 신고된, 당시 대학 새내기이던 히나타 에미로 밝혀진다. 가부라기를 중심으로 한 수사팀이 급거 꾸려졌으나 해당 사건의 수사가 이들이 아닌 공안팀에 배정되는 등 석연찮은 구석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가부라기의 동료 히메노 형사가 어릴 적,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는 에미가 실종됐던 1998년 그 해, 죽은 에미와 함께 같은 빌라에서 거주하면서 그녀의 제안으로 에미가 숨진 채 발견된 이곳 목장에 왔었던 기이한 경험도 그 가운데 하나다. 


히메노는 모친 없이 부친과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에미가 이사오면서 자신을 여러모로 잘 챙겨주거나 함께 놀아주었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엔 11살에 불과했기에 비록 막연한 감정이긴 했으나 어쨌든 에미의 상냥하고 바른 품성, 그리고 무엇보다 예뻤던 외모 때문에 히메노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랬던 그녀가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히메노는 어떡하든 그녀를 사망에 이르게 한 범인을 찾아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공안팀이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다 보니 자신들의 역할과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쉬운 대로 일단 그녀의 주변 인물부터 하나 둘 탐문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히나타 에미는 히나타 유메와 함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성장한 여성이다. 하지만 건강한 유메와는 달리 에미의 경우 태생적으로 허약 체질이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에겐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던 민담 하나가 유독 강렬하게 각인돼 있던 참이다. ‘하늘을 나는 소녀’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빨간색 기모노를 입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소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모든 면에서 풍족한 행복 마을을 발견하게 되고 이 곳에서 그야말로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그의 대가로 제물이 될 뻔한 섬뜩한 내용의 이야기다. 


에미는 너무도 강렬한 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언젠가부터 '하늘을 나는 소녀'가 되고 싶어 했다. 민담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장소는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워 누구나 동경하는 곳이면서도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기도 한, 이른바 '유토피아'였다. '하늘을 나는 소녀'라는 기묘한 이야기로 서막을 여는 이 책은 곧이어 사일로 속에서 하늘을 나는 형태의 반 미이라가 된 엽기 형태의 시신이 16년 만에 발견되는 충격적인 실재 사건으로 본격적인 전개를 알린다. 


저자는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짐짓 기묘하기까지 한 파격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을 압도해 나가며, 민담 '하늘을 나는 소녀'는 이 책 곳곳에서 복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책의 제목인 '단델라이언'은 민들레를 의미한다. 그의 유래는 '사자의 이빨' 혹은 '송곳니'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알려져 있다. 외양은 예쁜 꽃이지만 이렇듯 날카로운 의미를 지닌 데에는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화자 '나' 즉, 에미가 대학에 입학한 뒤 노부세와 아마노가 회장으로 있던 민들레 동아리에서의 활동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녀는 거대담론보다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가벼운 취지로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해 왔으나, 물론 회장인 노부세와 아마노에게 이성적으로 끌린 측면 또한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로 인한 후폭풍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아름다운 장미꽃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감춰져 있듯, 한없이 여리여리하고 아름답기 만한 민들레에도 이렇듯 치명적인 송곳니가 여지없이 숨겨져 있었다. 


에미가 히메노와 함께 찾았던 유토피아 목장은 목가적이면서 아름다운 풍광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진 멋진 곳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 아래로 짙은 초록색 잔디가 쫙 깔려 있고, 그 가운데엔 천장이 돔 모양으로 이뤄진 빨간색의 사일로가 세워져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향긋한 자연의 향기를 코끝으로부터 온몸에 전달해주고 있으며, 사일로 주변에 펼쳐진 민들레꽃 군락은 너무도 아름다워 열린 입을 차마 다물 수 없게 할 지경이었다. 진정 실화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히메노의 과거 기억속 목장은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16년이 지난 뒤 그 아름답기 짝이 없던 목장은 페허로 변해 있었고, 사일로에는 3미터의 높이 위로 날카로운 쇠파이프에 관통된 채 한 여성이 하늘을 날고 있는 형상으로 미이라가 되어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늘을 나는 소녀' 이야기속 마을은 겉으로는 일견 무척 평온한 듯 보이나, 사실 그의 이면으로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진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처럼 유토피아는 환상 그 자체이며, 실재하는 현실의 그것은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꽃 민들레에 우리가 모르던 날카로운 송곳니 단델라이언이 숨겨져 있듯 말이다. 


탄생의 비화는 물론, 16년 전 당시 일본 내에서 횡행하던 사회 문제까지, 아울러 철학적 통찰로부터 과학적 지식까지, 상당히 넓은 영역에 걸쳐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 설킨 채 반전을 거듭하면서 미처 짜맞추지 못 한 퍼즐을 하나 둘 채워 나간다. 복잡한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더니 마침내 온전한 형태로 독자들 앞에 활짝 펼쳐놓는 저자의 그 주도면밀함에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일단 책을 펼쳐놓고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저자  가와이 간지

역자  신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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