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2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쥬라기 공룡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새 날 2018. 6. 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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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가 조성된 이슬라 누블라 섬이 화산 폭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 그에 따라 이 곳에서 서식 중이던 공룡들 역시 같은 위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다. 쥬라기 월드를 설립한 록우드 재단의 밀스(라프 스팰)는 이들 공룡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로 결정한다. 이의 적임자로는 현재 '공룡보호연대' NGO를 운영하고 있는 클래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와 과거 공룡 조련사로 활약했던 오웬(크리스 프랫)이었다. 이들은 일행 지아(다니엘라 피네다), 프랭클린(저스티스 스미스)과 함께 이슬라 누블라 섬으로 황급히 떠난다. 



하지만 일행이 도착한 쥬라기 월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공룡의 놀라운 자태를 감상할 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분화구가 벌써부터 달아오르면서 땅속 깊숙이 위치한 뜨거운 분출물들을 마구잡이로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용암과 함께 땅속에 묻혀 영원히 화산재로 전락하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는 사이 밀스가 고용한 용병들은 공룡들을 차곡차곡 그들의 수송선으로 옮겨 싣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웬과 클래어 일행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완전히 새된 셈이다. 분화가 시작되면서 사방으로 흘러내려 오는 용암을 피해 높은 지대에 올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채 공룡을 나르거나 싣는 용병들을 바라보던 그들은, 지금 당장 이 곳을 뜨지 않으면 화산재가 될 처지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무작정 수송선으로 뛰어드는데...



공룡은 애초 탄생시키지 말아야 할 존재였을까? 다행히 수송선에 몰래 탑승하면서 화산폭발의 후폭풍으로부터 간신히 생명을 구한 오웬 일행의 눈에 들어온 건 목이 너무 길어 슬픈 짐승이 아닌, 천지를 온통 붉게 물든 화산 폭발의 그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울부짖던 목이 유난히 긴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슬프디 슬픈 실루엣이었다. 이를 바라보던 일행의 안타까워하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공감하며 동화하게 된다. 왜일까? 


이슬라 누블라 섬의 화산 폭발로 인해 첨단 생명과학기술로 재탄생한 공룡들의 절멸이 점쳐지자 이를 구할 것인지 혹은 자연의 섭리 대로 방치할 것인지에 대해 정치권에서 뜨거운 논쟁이 불붙었다. 더구나 인간 과욕의 결정체인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띵작이 아닌 그야말로 괴작 '인도미누스 랩터'의 포악한 실체는 이러한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을 정도다. 



영화는 그 탄생 과정이 어떠했든 이미 한 개체의 생명으로 자리매김한 공룡을 그대로 살리고 보존해야 한다는 순수한 시각을 지닌 사람들을 한 축으로 하고, 공룡을 오로지 돈벌이 수단화하려는 속내를 지닌 속물적인 사람들을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두 축의 팽팽한 구도로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논란과 다툼은 생명을 다루는 기술에는 반드시 윤리적인 책무가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지만, 오웬과 랩터 '블루', 즉 인간과 공룡과의 교감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의 모태인 '쥬라기 공원'이 탄생한 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당시 '쥬라기 공원'은 혁신이었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공룡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여러 겹의 주름은 물론, 숨을 쉴 때마다 피부의 그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까지 온전히 묘사한 영상 기술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초식 공룡이 포효하면서 멀리서 다가올 때마다 쿵쿵 울리는 그 두근거림과 실제로 눈앞에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을 때 느껴지던 공감각은 나조차 쥬라기 공원에 와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오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난 당시의 감흥을 잊지 못해 2편이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상영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업고 다녀야 할 만큼 첫 애가 어렸다. 게다가 녀석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시작된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이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첫 장면부터 공룡의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공포에 질린 사람의 비명소리가 난무하던 탓이다. 모처럼의 영화 관람 기회는 녀석 덕분에 보기 좋게 날아갔다. 


그 뒤로 쥬라기 시리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대단한 CG 기술을 이미 첫 편에서 맛본 탓에 더 이상의 볼거리는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이런 류의 영화는 내용 또한 뻔할 것이라는 편견이 동시에 작용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무려 25년만에 만나는 쥬라기 시리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스케일과 긴장감은 가히 압도적이었으며 한층 정교해졌다. 원작에 대한 오마주도 엿보인다. 



여러 종류의 공룡들과 함께 초원을 뛰어다니던 '쥬라기 공원'의 그 장면이 이번 영화에서도 연출된다. 물론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공룡들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날아드는 화산 폭발의 잔해물을 피해야 하는 훨씬 고난이도의 미션이었다. 실내에서 랩터를 피해 요리조리 숨어 다니던 비슷한 장면도 연출됐다. 오웬과 클래어 그리고 록우드의 손녀인 메이지(이사벨라 써먼)가 이를 해낸 것이다. 


인간의 생활 공간으로 뛰어든 공룡 무리, 그리고 인간과의 교감을 넘어 공감까지 가능해진, 반려동물화된 조금은 특별한 공룡, 이들이 만들어낼 다음 편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5년 전 쥬라기 공원을 감상한 뒤 왠지 뻔할 것이라는 지레 짐작과 아이들 수준의 영화로 낙인을 찍어 관람을 꺼려하거나 주저하는 분들이 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적극 추천한다.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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