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투 운동이 불편하시다고요?

새 날 2018. 5. 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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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남성을 범하는 행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것도 성폭행의 범주에 속하나요?" 성폭력 법령에서의 범죄 유형 가운데 강간과 준강간을 설명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 50대 후반의 남성이 강사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교재와 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강간이란 폭행이나 협박 후 성기를 삽입하는 행위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빌미로 작용한 듯싶습니다. 여성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식의 발칙한 질문이 대뜸 되돌아 온 것입니다. 


며칠 전 있었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예방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남성은 여성에게도 성폭행 혐의가 성립된다는 사실을 정말로 몰라서 질문했던 것일까요? 물론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 영역 외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있던 주변 남성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선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성 강사의 반응을 살피려는, 반쯤 장난이었을 개연성이 아주 높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또한 성희롱의 일종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을 사례로 들고 성평등을 운운하면서 남성들의 인식 전환을 요구해 오자 이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이와 같은 엉뚱한 질문을 꺼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의 말투로 비춰보건대 견고한 남성 본위의 세계에 왜 개입하여 입지를 흔드느냐는 따위의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기분이 언짢다는 의사를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희롱과 성추행 등으로 화제를 돌리자 이번에는 또 다른 남성이 여성의 옷을 문제 삼고 나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짧은 치마 등 쳐다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야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로 인해 눈을 어디에 고정시켜야 할지 모르겠으며 업무에도 방해가 되는 상황인데, 이는 전적으로 여성들의 잘못된 행태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조용하던 강의실은 남성들의 동조로 이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많은 남성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이는 여성이 야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한 것이며, 조신하게 입었다면 얼마든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노라는 시각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미투 운동 등 양성 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과거의 가치관으로부터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하는 연령대에 해당하는 많은 남성들에게는 강사가 하는 이야기들이 살갑게 다가올 리 만무합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관한 한 가해자 잘못이라기보다 피해자 측이 원인제공 내지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여전합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12년 나주에서 벌어진 고종석 사건을 상기시켜 보겠습니다. 집에서 곤히 잠을 자던 8세 여아를 이불째 납치하여 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입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알려졌고, 어머니는 아이가 납치되던 그 시각에도 여느 때처럼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게임 중독자로 전해졌습니다. 언론은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마치 아이를 방치한 채 게임에 빠진 어머니와 술에 절은 아버지로 인해 성폭행이 일어난 것처럼 보도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되레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정작 성폭력을 저지른 당사자는 고종석이었는데, 비난의 화살은 피해자 가족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건 앞서 언급한 그러한 사연이 결정적인 이유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가해자가 아이를 성폭행한 사실이 문제이지,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빚어진 사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입니다. 아울러 8세 여아가 집에서 혼자 잠을 청하고 있다고 하여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식의 발언 역시 본질을 비껴간 언어도단일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여아 혼자 잠을 자고 있다고 하여 성폭행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예쁜 꽃이 피어 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이를 꺾었다고 하여 예쁜 꽃을 탓할 수 없다거나 며칠 굶은 사람이 빵가게 곁을 지나가다가 고소한 빵냄새에 취해 그만 빵을 훔쳤다고 하여 그가 도둑질을 하게 된 원인 제공을 빵가게에 돌릴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쁜 꽃을 보면 그냥 '예쁘다' 하며 바라보고 지나갈 뿐 이를 꺾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그냥 먹고 싶다는 욕구만 생길 뿐이지 이를 직접 행동에 옮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꽃을 꺾은 사람이나 빵을 훔친 이의 개인적 성향의 문제일 뿐, 꽃과 빵가게의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하여 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 건 그 사람의 잘못이지 이 여성의 잘못으로 몰아간다는 건 본질을 왜곡시키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짧은 치마가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분명합니다만,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그냥 바라보는 행위가 전부일 뿐입니다. 결국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기에 사단이 빚어졌다는 따위의 인식이 문제인 셈입니다. 


앞서 살펴본 고종석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언론마저 피해자 프레임에 쉽게 편승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당시 반성했다고는 하나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며칠 전 30대 남성이 같은 빌라 같은 층에 사는 50대 여성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성폭행 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렇듯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은 성폭력의 가능성에 노출되기 쉽고 항상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남성들이라면 결코 이해가 쉽지 않은 위험이자 불편함입니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젠더 감수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남성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더불어 미투 운동에 반발하는 심리의 일환으로 펜스룰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성들이 느낄 법한 불편함은 최근에서야 부각된 종류의 것입니다. 이보다 훨씬 크고 어려운 불편함을 여성들은 평생 감수하면서 살아간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미투 운동이 불편하게 다가온다고요?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폭력에 관한 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관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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