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폭식투쟁 그리고 정치인을 향한 조롱

새 날 2018. 5. 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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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6일 광화문 광장, 이 곳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수십 일째 목숨을 건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청객이 나타났다. 주로 온라인의 음습한 곳에서 활동하던 극우 코스프레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이 오프라인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이 날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피자와 치킨 등을 먹으면서 이른바 폭식투쟁을 벌였다. 100여 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동참하겠다며 모여들었고, 폭식투쟁에 참가한 이들에게 누군가는 피자 100판이나 돌렸다. 일베 회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광화문광장에 앉아 준비된 피자와 치킨 등을 먹기 시작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잔인했던 그 날의 기억이다.


ⓒ뉴스1

ⓒ세계일보


2018년 5월 4일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이 날 낮 12시 50분쯤 그가 농성 중이던 장소에 의문의 피자 한 판이 배달됐다. 현장에 있던 당직자가 이를 확인 후 돌려보내긴 했으나, 정황상 그의 단식 농성을 조롱하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주문한 것으로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투쟁에 돌입한 이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농성 장소에서 치킨 파티를 열자고 제안하는 등 단식투쟁을 조롱하는 청원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연합뉴스


그런데 같은 당 나경원 의원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처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의 단식 농성장에 배달된 이 피자가 4년 전 세월호 유가족을 모독했던 ‘폭식투쟁’을 연상케 하여 논란이 예상된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물론 단순히 단식 농성 현장 그리고 피자라는 그림만을 놓고 본다면 두 사건은 일견 비슷해보인다. 아울러 그 성격과 목적은 판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사건 모두 단식 농성을 벌이는 이들을 조롱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 정치인의 단식 농성을 향한 조롱을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에 대한 모욕 및 조롱과 단순 비교하거나 이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객관적이지도 않다.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폄훼와 모욕은 인간 존엄에 관한 사안이다. 당시 유가족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폭식투쟁을 벌이며 히죽거리기까지 하던 그들로부터는 단순 조롱과 모욕을 넘어 인간이 과연 존엄한 존재가 맞는가라는 매우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건 이미 사람임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그들은 악마였다. 



자식을 잃은 뒤 그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수십 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 농성에 돌입한 유족들 앞에서 그렇게 치킨과 피자를 게걸스럽게 뜯던 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환멸을 느껴야 했다. 인간이 정녕 존중 받고 배려 받아야 하는 존재가 맞는지 뿌리부터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진영 논리에 가둬두어야 할 사안이 아닌 까닭에 이들의 행위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존중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상식적이거나 합리적인 행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피자 한 판이 배달된 사안을 두고 세월호 폭식투쟁의 재연이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 정치인을 조롱한 게 어째서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모욕과 동일한 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 걸까? 보수나 진보 어느 쪽 진영도 아닌 사안을 정치 쟁점화시키더니 이젠 이런 사건마저도 함께 엮고 싶은 걸까?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한 표 행사에 의해 탄생하는, 바쁜 우리를 대신하여 일을 하는 직업인이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정치인이 얼마나 올곧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유권자가 늘 지켜보면서 곁에서 채찍질을 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은 어떤 정당인가. 지금은 옷을 갈아입고 표정까지 싹 바꾸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비정상과 상식적이지 못한 사회로 둔갑시킨, 뇌물죄 등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 두 사람과 운명 공동체적 성격이 짙은 정당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등 한반도의 평화체제로 가는 주요 길목마다 딴지 걸기와 어깃장을 놓으면서 국민 여론에 전면 배치되는 행위만을 일삼고 있다. 그렇기에 조롱은 그들을 향한 일종의 채찍질이다.



자유한국당은 자칫 궤멸 위기에 놓인 자칭 보수의 회생에 사활을 걸고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내건 채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드루킹 특검 요구 또한 정치 쟁점화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읽힌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다름 아닌 권력 쟁취인 까닭에 이들의 이러한 분투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직업인이라면, 그들의 주인인 유권자들의 쓴소리도 달게 받아야 마땅하다. 때로는 조롱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게 두려웠다면 애시당초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노릇이다. 자유한국당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에 비견될 정도로, 물론 이는 그들 스스로의 해석이지만, 자신들의 눈물 겨운 노력에 왜 유권자들이 외려 조롱하며 비난하고 나섰는지에 대해 이참에 깊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유권자의 조롱을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폭식투쟁과 엮으려는 건 염치를 모르는 뻔뻔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언론 역시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논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 그대로 옮기지 말라. 역겨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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