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리는 갑질로부터 자유로운가

새 날 2018. 5. 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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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한항공 전무 조현민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또 다시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항공 일가의 버라이어티한 갑질 행태를 바라보면서 대중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렇습니다. 우월적 지위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적 약자에게 행하는 갑질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케 하는 인자임이 분명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갑질 공화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갑질이 비단 재벌이나 사회 지도층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이른바 내리갑질이라 할 만큼 일상에서의 보통사람들에 의한 갑질은 흔하디 흔한 모습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부족 현상이 낳은 일종의 폐해 가운데 하나인 셈이죠. 우리는 수 년 전 등짝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씌어진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의 모습이 이슈로 떠올랐던 사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손님들이 평소 알바생을 얼마나 하대하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어 마음 한켠이 짠하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그동안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재벌가와 사회 지도층의 갑질 행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우리는 그 때마다 이들을 성토하며 갑질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르짖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재벌 등의 갑질 행태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전반으로는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보통사람인 우리인들 갑질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는 형국입니다. 오늘자로 보도된 한 언론사의 기사 내용을 거들떠보니 알바생들에게 있어 갑질을 일삼는 손님은 '진상'으로 분류,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는군요. 이른바 블랙리스트인 셈입니다. 내용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드라'는 대여섯 명이 함께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놓고 2-3시간 이상을 버티는 고등학생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특징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속 히드라처럼 카페 바닥에 침을 뱉는 행위입니다. 아주 적절하면서도 그럴 듯한 비유로군요. '케이크살인마'는 케이크나 샌드위치를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내용물을 살피면서 뭉개 놓는 손님의 유형을 가리킵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구입하지는 않는다고 하는군요. 충분히 열 받을 만한 상황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화를 내며 욕을 내지르는 유형을 일컫습니다. 알바생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대상이라고 하는군요. '시럽성애자'는 커피에 시럽을 잔뜩 넣고 절반가량을 마신 뒤 너무 달아 맛이 이상하다며 새 걸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의 유형입니다. 도대체 어쩌라고.. 진상들의 유형에 부여된 명칭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통통 튀는 창의적인 내용들 일색입니다만, 사실 그 속내를 알고 보면 무척 씁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조현민의 갑질 논란도 그렇거니와 그보다 앞서 빚어진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갑질을 성토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일상에서는 우리보다 약자의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진상 짓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실제 통계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알바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일보


이에 따르면 알바생의 93%가 손님의 매너 없는 행동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알바생들이 '비매너 유형'으로 꼽은 것 가운데 1위는 '반말로 명령하듯 말할 때'(54.2%)였습니다. 이어 '돈이나 카드를 던지거나 뿌리듯 줄 때'(32.6%), '알바생 권한 밖의 일을 요구할 때'(28.2%), '자기가 실수해놓고 무조건 사과하라고 할 때'(24.7%), '트집 잡아 화풀이할 때'(15.6%) 등의 순이었습니다. 


알바생의 대부분은 청년 계층입니다. 이미 사회 생활에 몸 담고 계신 분들이라면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이들보다 여러모로 우위에 위치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만만하다고 여겨지거나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하위에 놓여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상대를 아무렇게나 대우하고 갑질을 일삼는 행태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 일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입니다.



조현민의 '물벼락 갑질'에 대해선 반드시 엄중하게 단죄하여 우월적 지위를 오남용하는 사례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하며, 아울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갑질 행태에 대해서도 구성원 모두가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는 조현민을 욕하고 비난하면서도 뒤로 가서는 또 다시 알바생이나 자신보다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 짓을 일삼고 갑질을 행한다면 앞서 체득한 학습 효과는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사실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적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갑질을 행하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의 심리 기저에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지위를 확인해보려는 심보가 깔려 있습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큼지막한 활자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들을 일상에서 접하면서도 무언가 깨달은 바 없이 여전히 갑질이 횡행하고 있고, 또 다시 불거진 재벌가의 갑질 행태를 바라보며 욕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내리갑질을 일삼는다면, 단언컨대 우리는 손님으로 대접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알바생들이 진상 고객을 이렇게 호칭한다고 하더군요. '손놈'이라고.. 


여러분은 손님이 되시겠어요, 아니면 손놈이 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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