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가방은 죄가 없습니다

새 날 2018. 4. 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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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최근 가방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이 소유한 명품 가방은 그 여성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여성은 상대를 치켜세우기 위해 이름 대신 가방 상표를 부른다’는 내용의 글이 일본 SNS에 게재되면서다. 일본 여성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방식이 참으로 기발한 데다가 재치 만점이다. '여자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방’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명품 가방 대신 독특하거나 저렴한 가방 사진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플로리다 주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참사로 인해 많은 학교가 학생들의 등교 시 투명가방을 메도록 조치한 바 있다. 총기를 몰래 숨겨 교내로 들어오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이로 인한 사생활 침해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다.


ⓒ국민일보


가방은 태생상 그 기능과 역할이 아주 뚜렷하다. 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용구로써 무언가를 소지하기 위해 활용된다. 보통 가죽이나 천, 비닐 따위로 만들어진다. 즉, 손에 일일이 들고 다니기엔 짐이 많거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비교적 손쉽게 보관하면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매우 고마운 제품이 다름 아닌 가방이다. 오로지 패션 용도로만 활용되는 경우도 간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또한 어떤 브랜드가 달려있든 관계 없이 가방은 무언가를 넣어두는 기능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사람이 이에 개입하면서 온갖 사단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방 위로 인간의 욕망이 덧입혀지는 순간 동일한 쓰임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양태로 우리 삶에 파장을 일으키거나 영향을 미쳐오곤 한다. 가방에 책을 넣어두든 먹거리를 넣어두든 혹은 총기를 넣어 다니든, 이는 언제까지나 가방 주인이 누려야 할 사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개인의 총기 소지가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라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법한,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에 책이나 소지품 등을 넣어 다니는 일조차 위험천만한 행위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또 다시 총기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 때문이다. 덕분에 미국의 학생들은 가방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치 자신의 속을 낱낱이 까발려놓은 듯 민망하기 짝이 없는 투명 재질로 된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한다. 이는 소수의 특정 세력에게 이익을 안겨주고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불특정다수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사생활의 권리마저도 과감히 내어준 꼴이 아니면 무얼까? 


아울러 어차피 똑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임에도 천이나 가죽 위에 명품 로고가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방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곤 한다. 더욱 웃기는 건 혹여 위조 제품이라고 해도 이를 눈치채지 못 하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명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일 테다. 사실 위조 제품이거나 진품이거나 관계 없이 가방의 역할은 한결 같다. 무언가를 담아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욕망이 빚어낸 그 명품 문양의 여부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내며 이를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환대하고 악용할 뿐이다. 가방은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는데, 사람들은 되레 그 껍데기에 씌워놓은 표식 하나로 울고 웃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일보


이와 관련하여 서두에서 언급한 일본 여성들의 가방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보자. 한 여성이 올린 사진에는 종이가방에 명품 문양이 그려져있다. 가방의 색상도 그렇지만 해당 문양은 어디선가 많이 본 종류의 것이다. 시중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브랜드다. 그러나 종이 위에 명품 브랜드를 갖다 붙인다고 하여 종이가 다이아몬드로 변할 리는 만무하다. 명품 문양이 그려져있든 그렇지 않든 종이가방은 애초 자신의 소임만을 다할 뿐이다. 가방은 무언가를 소지하게 하는 기능을 하거나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아이템에 지나지 않으니, 이에 대한 가치 부여는 결국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재치있게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고 많은 제품 가운데 유독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얼까? 짐작컨대 제품이 갖고 있는 본연의 기능이나 역할보다는 이 제품을 통해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명품이 구축해놓은 이미지에 탑승하려는 기대심리 탓이 클 것 같다. 이는 명품 브랜드가 갖는 이미지, 이를테면 아무나 쉽게 구입할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 즉 경제적인 돋보임을 통해 자기 만족을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일종의 욕망의 발현 따위가 아닐까?



남성들은 일상적인 외출 시 대체로 빈 손으로 다니는 걸 선호한다. 일단 나부터도 그렇다. 특별히 서류나 짐 등을 소지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굳이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다가올 뿐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사정이 조금은 다른 듯싶다. 화장품 등 평소 소지해야 하는 것들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방과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업체들의 상술이 이러한 경향성을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유독 가방과 관련한 이슈가 여성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는 듯싶다. 


ⓒ세계일보


명품 가방을 소지한 여성을 향해 '된장녀' '김치녀'라 비하하면서 여성 혐오의 빌미로 삼아온 우리네나 일본의 사례는 어쩌면 완전히 판박이일지도 모른다. 일본 여성들은 여성의 가치를 가방으로 결정한다는 이러한 비아냥과 혐오에 대해 과자봉투 모양을 흉내낸 가방이나 캐릭터 모양의 가방, 그리고 신발을 응용한 가방 등 재치 만점의 표현으로 대응에 나섰다. 특히 신발을 응용한 가방은 실용성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가방을 바닥 아무 곳에 놓아도 더럽혀지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한 여성의 가치를 오롯이 가방으로 판단하고 평가, 가방과 여성의 가치를 등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명품 회사가 가장 반겨할 만한 말이다. 여성 스스로를 치켜세우기 위해 가방 브랜드가 활용된다고 하는 주장 역시 그들의 마케팅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소유한 명품 가방은 그 여성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하여 가방이 여성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건 그야 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어쨌든 가방이 근래들어 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이렇듯 시류에 따라 그 가치가 널뛰기하거나 쓰임새가 달라지게 되는 건 가방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오롯이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 때문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가방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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