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모두가 공무원 꿈꾸는 사회, 누구를 탓해야 하나

새 날 2018. 4. 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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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국 317개 시험장에서 치러진 전체 4천953명을 선발하는 2018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는 총 20만2천978명이 응시, 평균 경쟁률 41대 1을 기록했다. 지난 해 5700여 명을 뽑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공시족의 숫자는 25만여 명에 이른다. 6년 전이던 2011년 18만5천 명의 규모에 비해 35%나 증가한 수치다. 40대 1을 훌쩍 넘는 극한의 경쟁률을 마다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이들이 공시족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층 취업 준비생 10명 가운데 4명은 공시족일 정도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고학력 공시족의 급증 현상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모두가 공무원이 되겠다고 이의 준비에 매달리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공시족이 증가하는 사회의 흐름은 국가 전체의 경제 활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시족 증가로 인한 국가 경제 손실액이 무려 17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시족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유발되는 소비보다 해당 기간 동안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누수되는 국가 경제의 기회비용이 압도적으로 큰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혹자는 청년들이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는 건 본인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무척 불행한 결과라며 일갈한다. 공공영역에만 청년 등 인재가 몰릴 경우 그의 반대급부로 여타 분야에서의 발전과 혁신은 더욱 더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년을 비롯한 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왜 다수가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걸까? 공직은 무엇보다 직업 안정성에서 월등한 비교우위를 갖추고 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된다는 사실은 요즘처럼 불안한 시대엔 대단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근래 들어 삶과 일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열풍이 불면서 질 좋은 일자리로서의 공무원은 더욱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좋은 일자리는 모든 이들의 열망이거늘, 이러한 현상을 탓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 동안의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이른바 공시족을 자처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스펙 등에 구애 받지 않고 노력을 통해 필기시험이라는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한 절차를 통과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합격의 문호가 넓어진다는 특징 때문이다. 심각한 청년 취업난, 그리고 최근 불거진 공기업 및 금융권의 채용 비리는,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게 한다. 


인크루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63.3%가 특혜채용, 인사청탁 등을 목격하거나 실제로 받아 보았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채용 비리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많은 구직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점수를 조작하면서까지 특혜채용을 일삼는 기업들로부터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크루트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커리어의 설문조사 결과 분노감을 느꼈다는 구직자가 33.5%로 가장 많았으며, 허탈했다는 26.3%, 그러려니 했다는 22.1%, 그리고 배신감이 들었다는 구직자가 10.1%에 이른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그러려니 했다는 응답자가 무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 꼴이라는 대목이다. 그만큼 채용비리가 기업 문화에 만연해있으며, 안타깝게도 많은 구직자들이 어느덧 체념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구직 활동과 기업 선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 채용비리를 1위로 꼽을 만큼 이는 구직자들에게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불공정 관행이 만연하다 보니 우리 청년들이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을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 여부보다는 부모의 재력과 인맥으로 꼽는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의 절반(50.5%)가량은 청년의 성공 요인 1순위로 부모의 재력을, 2순위로 인맥(33.5%)을 꼽고 있었다. 이는 중국 45.3%, 일본 35.4%가 재능을 1순위로 꼽고 있으며, 미국의 23.4%가 노력을 1순위로 꼽은 결과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최근 금융권이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필기시험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필기시험 과정을 도입했단다. 채용 과정에서 또 다시 빚어질지도 모를 부정의 소지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일종의 자정 노력이자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조만간 국내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리라는 전망이다. 


금융권의 최근 움직임, 그리고 공무원 시험으로의 쏠림 현상은 결국 채용 과정에서의 불공정 관행을 결코 믿을 수 없노라는 구직자들의 반발 심리에서 비롯된 반작용 현상에 가깝다. 혹자는 공시족은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라고 말한다. 갈수록 점증하는 그 수치가 두렵기까지 하단다. 한창 경제활동에 임해야 할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오로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수년 동안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결코 과장되거나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해당 현상을 과연 누구의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관행이 자꾸만 청년들의 등을 공시족이 되라며 떠밀고 있는데 누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특정 영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유인하기 위한 질 좋은 일자리를 대거 만들고, 수당을 지급하는 등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채용 문화를 안착시키는 게 가장 우선 아닐까? 이러한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갖춰놓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면서 공정한 채용 절차로 꼽히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이들을 감히 누가 탓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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