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당신은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예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새 날 2018. 3. 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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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기관에서 일해온 브래드(벤 스틸러)는 어느 날 불현듯 자신의 삶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다가왔다. 대학 동창들은 하나 같이 각자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부자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사회 저명 인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반해 자신만은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바라보니 그동안 무엇을 해온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의 신세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다가온다. 



브래드는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람스)를 위해 함께 아이비리그 투어에 나서기로 한다. 열등감과 자괴감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몰라해 하던 브래드는 아들이 하바드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식에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이 날짜를 착각하는 바람에 그 귀한 면접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만다. 브래드는 이곳 저곳에 수소문하여 어떡하든 면접을 성사시키려 노력해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결국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껄끄러운 친구 크레이그 피셔(마이클 쉰)의 도움을 받기로 하는데...



브래드는 오직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오느라 자신의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SNS를 통해 간간이 올라오는 친구들의 소식과 사는 모습은 자신의 처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브래드는 심지어 이런 상상까지 하게 된다. 브래드에게는 무엇이든 자신을 긍정적으로 봐주며 늘 힘을 북돋워주는 이상적인 아내 멜라니(제나 피셔)가 있었으나 다른 친구들처럼 능력이 아주 출중하거나 혹은 돈이 많은 아내를 만나게 됐다면 삶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따위의 생각 말이다.



크레이그 피셔는 백악관과 연줄이 닿아 있으며 TV 토크쇼에 출연하거나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할 만큼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인사다. 또 다른 친구는 돈이 너무 많아 벌써부터 은퇴, 해외로 나가 아주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브래드의 시각에서 볼 때 말이다. 어떤 친구는 큰 부자가 되어 전용기를 타고 다닐 만큼 풍족하고 여유가 흘러 넘쳤다. 온통 부러움 천지다. 이들과 비교하니 그는 더욱 움츠러들며 땅속으로 숨어들고 싶은 심정뿐이다. 왠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다. 



음악을 하는 아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조차 몰랐던 그는 하바드 대학 진학의 가능성이 높다는 아들의 발언에 급작스레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왜 그랬던 걸까? 물론 알 만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들의 명문대 진학을 통해 일정 부분 보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테다. 



영화는 친구를 비롯, 다른 누군가와의 끝없는 비교를 통해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고 자기 비난을 일삼던 브래드가 아들과의 캠퍼스 투어에 나선 뒤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만남을 갖게 되고 아들과 시간을 함께하면서 자신의 삶이 결코 보잘 것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브래드는 내 모습을 상당히 빼닮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또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상처를 입으며 괴로워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또 다른 비교 대상을 찾아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 나는 그냥 나일 뿐이거늘, 왠지 모르게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심지어 그 때문에 행동에도 제약을 받기 일쑤다. 우리의 삶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식 공부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어쩌면 스스로의 열등감을 2세의 성공(?)을 빌려 덮어보려 하던 브래드의 심리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모든 세대가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우리는 브래드보다 더욱 더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매일매일을 자책에, 그리고 자기 비난마저 서슴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래드는 대학생 시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회 변혁에 관심을 쏟으며 노력해왔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누구보다 이 세상을 사랑해온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영화는 '괜찮아요 브래드 씨,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그럭저럭 잘 살아왔거든요' 라고 말하면서 그를 토닥여준다. 브래드에 대한 토닥임은 우리 모두를 향한 토닥임이다. 이렇게 또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감독  마이크 화이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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