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유난히 돋보였던 이유

새 날 2018. 2. 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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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마침내 화려한 개회식과 함께 가슴 설레게 할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오는 25일까지 16일 동안 펼쳐질 동계 스포츠 제전은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강원도 평창 일원으로 집중시키며 당분간 이곳에 반강제로 묶어놓을 예정이다. 특히 9일 펼쳐진 개회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은 물론, 미래까지 담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무한 감동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올림픽의 개폐회식엔 총 668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6000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1715억 원의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은 물론, 1839억 원이 투입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비해서도 월등히 적어, 한 마디로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이벤트였음을 객관적으로 입증시킨다. 게다가 전 세계인들에게 강한 임팩트까지 심어주었으니 요즘 유행하는 가심비까지 한꺼번에 충족시킨 멋진 행사였음이 틀림없다. 



이번 올림픽의 개막과 더불어 때마침 영국 BBC가 '역대 올림픽 개회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순간'을 선정 발표하였는데, 30년 전 우리 땅에서 개최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개최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1984년 LA 올림픽 모두 미국과 소련 양 진영 간 혹독한 냉전으로 인해 상대방 진영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각기 불참,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전락한 아픈 상처가 있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은 이를 극복했다. 바야흐로 이념과 갈등을 넘어선, 진정한 평화의 제전으로 자리매김한 대회였다.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었을 뿐 아니라 남북 분단의 극한 대치 상황에서 개최된 까닭에 평화의 이미지로 강하게 각인된 올림픽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훌쩍 흘렀다.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넓다란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형태는 30년 전에 개최된 올림픽 개회식이나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9일 개회식이 펼쳐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상공을 멋지게 수놓은 오륜기는 다름 아닌 첨단 기술이 동원된 드론에 의한 작품으로 알려져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가운데, 88 서울 올림픽 개회식 당시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 상공에도 오륜기가 그려졌었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를 불러모은다. 



1988년에는 스카이다이버팀이 하늘 위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아 직접 오륜기 형상을 그려내는 장관을 연출했다. 오늘날 오륜기를 그린 주체가 기계였다면 30년 전인 1988년에는 사람이 직접 오륜기를 그린 주체이자 동시에 오륜기의 객체도 됐던 셈이다. 물론 두 종류의 퍼포먼스 공히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한계를 극복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 아울러 에너지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스카이다이버들이 하늘 위에서 오륜기의 멋진 장관을 연출하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고된 땀을 쏟았을지는, 당사자 분들께는 외람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학창 시절 체육대회 등에서 펼쳐 보일 간단한 퍼포먼스를 위해 수없이 많은 나날을 오롯이 그에 매달렸던 기억을 통해 짐작하고도 남는다. 



드론이 평창 하늘에 그린 오륜기의 형상은 단 한 사람의 조종에 의해 연출된 결과물이라고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놀라운 것만큼은 분명하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천 대가 넘는 플라스틱 기계들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조종하려면 이 기계들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에 탑재돼있을 법한 인간의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고작 몇백 그램에 불과한 드론이라는 기계 덩어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고단한 땀방울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일지, 이를 예측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의 오륜기 퍼포먼스는 사람이 지닌 에너지를 스스로의 움직임에 의해 직접 투입한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평창 올림픽에서의 그것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기술이라는 매개로 집적된, 일종의 기술력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결국 두 퍼포먼스 모두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흘린 땀방울과 열정의 결정체인 까닭에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할 만한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30년 전 이 땅에서 올림픽 정신과 이념을 제대로 구현, 평화의 제전으로 승화시킨 88 서울 올림픽에 이어 위태롭기만 하던 한반도의 냉랭한 적대 기류를 이번 평창 올림픽을 기화로 다시금 평화의 기류로 바꿔 급물살을 타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드론으로 묘사한 오륜기 형상도 멋졌고, 아울러 우리의 전통과 미래를 상징하던 창의적인 퍼포먼스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남북의 선수가 하나되어 마지막 성화 봉송을 마치던 장면이 가장 뭉클하게 다가온다. 


평창 올림픽은 88 서울 올림픽을 뛰어넘어 바야흐로 근대 올림픽의 정신이자 이념인 '평화'를 올곧게 실현한 가장 멋진 스포츠 제전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 세대를 잇는 지난했던 평화를 위한 노력은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세계인에게도 동시에 뭉클한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하니 말이다. BBC가 선정한 '역대 올림픽 개회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순간'도 곧 갈아치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이미지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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