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최저임금 인상 당위성 입증, 고령 알바생 증가 현상

새 날 2018. 2. 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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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연일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그렇지만 2030 청년세대에게는 이러한 물리적인 추위보다 고용 한파로 인한 심리적인 추위가 더욱 피부에 와 닿을 것 같다. 이들이 현재 감내하고 있는 고통의 크기는 그래서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부모뻘 되는 세대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 역시 만만찮다. 노년층의 삶은 또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의 2015년 노인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1인 가구 포함) 63.3%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러한 처지를 입증이라도 하듯 75세 이상 초고령층 고용률은 OECD 5년 연속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65세 이상의 고용률 역시 30.6%로 OECD 국가 가운데 2위를 차지한다. 


이 대목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와 견주면서 그래도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게 어디냐며 볼멘소리를 낼 법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노년층 취업자의 대부분은 근로 환경이 열악한 비정규직인 데다가 저임금 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현실은 이렇듯 늙어서도 일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처지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표현이 결코 틀리지 않을 만큼 모든 계층에게 현재의 삶은 녹록치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평균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마냥 반겨하지 못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끔찍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정년퇴직 시기가 짧아지면서 퇴직 후 30년 이상을 직장이 없는 노후와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고용 불안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조기 퇴직을 유도하고 있고, 이들 연령대에게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상 대부분이 도태되기 일쑤다. 결국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다가 빈곤층으로 나앉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연유 때문일까? 고용 한파가 우리의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고령층의 취업 열기는 되레 뜨겁기만 하다. 정부나 지자체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고용센터 등에서 다뤄지는 취업성공패키지제도나 장년 인턴제, 그리고 50+재단의 보람일자리사업, 이번에 새롭게 시행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지원제도 등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 제도는 운영 특성상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이를 통해 공급되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청소나 경비 등 열악한 조건의 직무 일색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시간제 일자리 등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심지어 일자리라기보다는 재능 기부를 통해 소정의 대가만을 제공해줄 만큼 봉사 성격이 짙은, 절대로 직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종류의 직무도 부지기수다. 


정책 자체가 일자리의 질보다는 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에만 혈안이 돼 있기 일쑤다. 물론 이러한 장치가 정책의 혜택을 다수의 시민들에게 고르게 돌아가게 한다는 취지로 읽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 정책의 방점 자체가 아예 그렇게 찍혀 있는 셈이다.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 단물만 쏙 빼먹으려드는 악덕 사업주들의 몹쓸 관행도 정책의 효과가 아랫목까지 이르지 못하게 하는 주 요인이다.


ⓒ아시아경제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빚어지곤 한다. 중장년 이상의 연령층이 알바 고용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알바 포털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5년새 50세 이상 고령 알바생이 7배나 늘었단다. 이들로부터는 기존 알바생들과 차이가 확연히 벌어지는 지점이 엿보인다. 다름 아니라 꾸준히, 그리고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알바몬이 연령별 이력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희망근무기간 또한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이력서 가운데 1년 이상 장기 알바를 희망하는 이력서 비중은 13.2%인데 반해 50대 이상 고령층에서는 1년 이상 근무를 희망하는 비중이 이의 3배에 달하는 45%로 드러난 것이다. 늘어나는 평균수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일은 해야겠고, 정책적인 지원이 쏟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현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결국 임시직인 알바로의 진입을 희망하게 되는 일종의 수순 밟기이자 악순환이다.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인상되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이로 인한 각종 부작용들이 언급되고 있다. 심지어 이를 빌미로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움직임마저 포착된다. 하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50대 이상의 연령층이 대거 알바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신호 가운데 하나다. 중장년 이상에 해당하는 계층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부모, 즉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청년 계층의 부모 세대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봤듯 이들은 퇴직 후에도 그 앞 세대들처럼 마음 놓고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이들이 흔들리면 한 가정이 흔들리는 셈이고, 국가 공동체의 근간인 가정의 흔들림은 가계 전체를 뿌리째 흔들 개연성이 다분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임시직인 알바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최저임금만이라도 적정 수준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제도의 원래 취지 그대로, 적어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활 보장이 가능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이다. 한 달을 꼬박 일해도 150만 원 남짓밖에 만질 수가 없다. 물론 현실은 이러한 일자리라도 주어진다면 감지덕지일 테다. 그렇다면 50대 가장이 이 돈으로 과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해당 액수로 직접 한 달을 한 번 살아보시라. 작금의 최저임금이 과한지 적은지는 그때 가서 판단해도 결코 늦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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