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가난마저도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나

새 날 2018. 2. 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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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도 뭄바이의 한 빈민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주민들의 삶을 체험해보는 관광 상품이 출시됐다고 하여 화제다. 관광객들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다락방을 배정받게 되고, 주인 가족 13명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며, 화장실은 50가구가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슬럼호텔이다. 뭐 이 정도면 가난을 몸소 체험해보려는 이들에게는 적잖은 도움이 될 듯도 싶다. 


그런데 사실 뭄바이 빈민가를 대상으로 한 관광상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판매되어 오던 터다. 그 중에서도 관광객으로 하여금 슬럼 지역을 둘러보게 하는 가이드 투어는 가장 보편화된 상품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도 다름 아닌 이 지점이다.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뉜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슬럼 투어가 빈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슬럼가가 더러우며 범죄가 만연한 곳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나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단다. 슬럼 투어의 수익금 일부가 그들에게 흘러들어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는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한 마디로 가난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NS에 올릴 사진 몇 장으로 가난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으며, 관광객들이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바라보고 아무 때나 사진을 찍어 개인 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관광 수익금의 일부를 마을 주민들에게 분배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스럽다는 주장도 편다.


인도 뭄바이의 슬럼 투어 논란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2015년 인천 괭이부리마을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설속 공간적 배경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에 지자체가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여 당시 논란으로 불거졌다. 현대인들은 잘 모르는 가난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거창한 계획이었으나 괭이부리마을에는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던 터라 그들의 삶이 구경거리로 전락한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계획은 철회되고 만다. 


뿐만 아니다. 서울 종로와 영등포 등에 위치한 쪽방촌은 사진 애호가들로부터 1960~1970년대 풍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출사를 나온 이들로 인해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주민들이 더운 여름에도 창문조차 열 수 없을 만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단다. 이들이 남긴 사진 속에는 쪽방촌 사람들의 꾸밈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이를 SNS상에 올려 불특정 다수의 눈요깃거리가 되게 하고 있다. 


ⓒ한겨레


이러한 현상은 하루 아침에 유명 관광지로 뜨는 바람에 시도 때도 없이 붐비는 관광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 북촌이나 이화동벽화마을 등의 사례와 얼핏 비슷해 보이나 실상은 차원이 전혀 다른 사안이다. 북촌 등은 말 그대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한 핫 플레이스가 되어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고, 괭이부리마을이며 쪽방촌은 주민들의 생활과 삶 그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내 가난마저도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느냐"며 푸념 섞인 하소연을 늘어놓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통을 헤아리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혹자는 이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거나 가난한 생활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무언가 교훈을 얻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관찰 대상으로 전락한 이들의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한 현재의 생활 모습 그대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무게감이 전혀 다르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난의 관광 상품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빈곤에 대한 이해를 돕고, 빈곤 지역 주민에게 경제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몇가지 전제 조건이 따른다.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자란 세대들에게 가난을 체험해보도록 하는 건 훌륭한 발상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만큼은 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관광객이나 체험객들로 하여금 이들을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이 둘러보게 하는 건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일궈나가는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다. 가난이 무슨 죄도 아니거늘,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을 낱낱이 돌아보게 하는 관광 방식은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의 덕목이 철저히 배제된, 상식 이하의 낯뜨거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괭이부리마을과 쪽방촌 사례 모두 이러한 연유 때문에 논란으로 야기됐던 바다. 얼마 전 시리아의 참혹한 내전 현장을 관광상품으로 판매한다고 발표, 무수한 비난을 초래했던 러시아의 여행사나 누군가의 가난한 삶 및 그 현장을 관광 상품화하고 나선 또 다른 주체는 몇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엿보인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보듬기보다는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이런 류의 상품을 구입하는 개인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볼 때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셈이 된다. 


가난을 상품화할 수는 있다. 다만 가난한 삶이 구경거리가 되고 상품화 되어선 안 될 노릇이다. 어느 누군가에게 있어 가난은 삶 그 자체이자 이를 영위해 가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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