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람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새 날 2018. 2. 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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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성폭력을 고발하는 한국판 '미투 캠페인'이 사회 전역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등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이익을 기반으로 한 회사 등의 조직뿐 아니라 친목과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모임 및 단체 등에서도 장난이라면서 은근슬쩍 행해지는 성추행, 농담이라면서 툭툭 내뱉는 방식의 성희롱은 아주 흔하디 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문제로 다가올 만큼 말이다. 


나를 포함한 일부 남성들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래서 여전히 미개하다. 부와 권력을 쥔 남성은 대개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과시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놓곤 한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만만한 대상에게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대체로 비슷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내로라하는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남성들이 벌거벗은 채 각자 접대여성을 끼고 자연스럽게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은 무척이나 그로데스크하다.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때의 여성은 남성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한 사람의 인격체라기보다 특정 사내들의 권력욕을 불태우고 그들의 지위를 확인시켜주며 성욕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 비록 영화속 이야기인 까닭에 허구에 불과하지만 현실이 왠지 이와 전혀 딴판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 역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검찰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조직이기에 그 특성상 어떤 조직보다 남성 본위의 문화적 색채가 강한 데다 위계질서마저 철저할 것으로 짐작케 한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여성 검사의 폭로로 밝혀진 이번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일 테다. 우리 사회가,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남성들이,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는 비단 이번 검찰의 사례뿐 아니라 또 다른 사례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얼마 전 갑질 논란을 빚게 했던 모 병원 간호사들의 장기자랑은 단순한 갑질이라기보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가깝다. 병원 경영진들이 맨 앞좌석에 앉아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 간호사들의 다수가 원치 않은 짧은 의상을 입은 채 야한 춤을 추어야만 했다. 이때 간호사들이 느꼈을 자괴감과 수치심은 결국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자 성희롱에 다름 아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이러한 실태를 폭로한 모 신문사 역시 앞서 언급한 병원처럼 경영진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여성 기자들로 하여금 똑같은 방식으로 춤을 추게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슷한 사례가 비단 두 회사에서만 빚어졌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때마침 이번 미투 캠페인의 확산으로 또 다른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각된 건 모 항공사의 사례다. 회장이 출근길에 비행을 앞둔 승무원들을 격려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회장은 승무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거나 포옹하는 등 스킨십을 통해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승무원들은 과도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행사에 참석하는 승무원들의 복장이나 외모 등도 회장의 눈높이에 강제로 맞춰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머리를 짧게 자르지 못하게 하거나 바지 유니폼을 입지 못하게 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아울러 외모가 뛰어난 승무원들의 출근 시간까지 바꿔가며 맨 앞에 세우게 하고, 회장의 동선에 따라 이들을 배치, 박수를 치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도록 했단다. 


젊은 여성 간호사 및 기자들이 짧은 옷차림을 입은 채 야한 춤을 추게 하는 모습을 맨 앞좌석에서 즐겼을 회사 경영진이나 예쁜 승무원들을 별도로 추려 의상이나 외모를 자신의 취향으로 제한을 가하고 동선에 맞게 배치시켜 과도한 스킨십을 시도한 기업 회장이 벌인 행위는 궁극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이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는 명백한 성폭력이다.


그런데 여성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건 그 뿌리가 제법 깊다. 기업인들뿐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0년 12월 여기자 3명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룸싸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산을 더 찾는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이철우 전 사무총장은 지난해 ‘중앙 및 시도 선대위 여성본부 필승결의대회’에서 “전국에서 이렇게 예쁜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국회가 확 달라졌다. 나라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후보는 홍준표라는 것을 집에 가서 이야기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을 차별과 특정 용도의 도구로 바라보는 속내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2008년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경남 여성지도자협의회 정기총회에서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표와 막말로 치자면 거의 동급 수준인 덕택에 여자 홍준표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류여해는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이라 생각지 마라, 여자를 예쁘게 세워두는 꽃이라 생각지 마라"고 일갈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좌빨들이 난리치는 걸 보니까요, 저는 절대 용서 못해요, 싸우려면요, 뭐 미모도 좀 돼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발언한 바 있다. 


역시 막말로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 대표로 있는 정당은 무언가 달라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시각과 인식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막론하고, 심지어 여성 스스로도 올바르게 탑재하지 못한 경향이 크다. 때문에 여성 검사의 폭로가 그 어느 경우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되게 하는 대목이다.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기화로 우리 주변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적 시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받아 화제를 모은 인공지능(AI) 로봇 '소피아'가 방한하여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나랑 비교해 누가 더 이쁜 것 같냐"는 당시 박영선 의원의 질문에 소피아는 “로봇은 사람을 놓고 누가 더 예쁘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비교 대상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렇다. 여성이 됐든 남성이 됐든 사람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모두가 고귀한 존재이거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많은 지식이 축적되지 않은 로봇 소피아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가방끈도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길 법한, 학식과 인덕을 고루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되게 하는 병원 경영진이나 신문사 경영진,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들보다 훨씬 바람직하고 건전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좀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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