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기울지 않은 운동장을 만들어주세요

새 날 2018. 1. 30. 12:18
반응형

계속되는 한파 덕분에 온몸이 심하게 움츠러드는 요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층의 실업률이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용 사정 악화가 거듭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몸에 이어 마음마저 움츠러들도록 하고 있는데요. 지난 16일 발표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은 2014년 9.0%를 기록한 이래 3년 만에 9.9%까지 치솟으면서 4년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청년 계층이 현재 겪고 있을 미증유의 고통을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헤아린다는 건 어쩌면 시건방진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조심스럽습니다. 청년들의 입장에 직접 서보지 않은 이상 그들에게 누를 끼치는 결과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청년들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할 만한 뜨악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기관들이 그동안 채용 비리를 얼마나 저질렀는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는 놀랍기만 합니다. 무려 80%가 부정 채용을 일삼은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뽑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가뜩이나 구조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사회 진출을 준비해 온 청년들이건만,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지극히 공정치 못한 룰에 의한 청년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다가 아닐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큰 문제로 받아들여집니다. 세상이 온통 불신투성이임을 입증하는 셈이니까요. 


현재 드러난 채용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상대적으로 공정할 것이라 기대케 했던 공공기관마저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일반 사기업의 경우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노릇입니다. 이러한 불공정 현상이 일종의 관행처럼 기업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분노케 하고 절망감에 빠뜨리게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조적인 여건상 치열한 경쟁은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젊은이들은 희망을 짓밟히고 꿈마저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SBS 방송화면 캡쳐


이렇듯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실에 치인 젊은이들은 현실 감각을 놓치거나 잃기 십상입니다. 아무 의미 없다며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몸짓을 '무민세대'라는 그럴 듯한 형태로 포장하고 있고, 특별한 사람이 아닌 그냥 '아무나'가 되겠다며 '노멀크러시'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이러한 포장조차 청년들 스스로가 아닌 기성세대가 모두 꾸민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위로한답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나 빠져들 법한 색칠책을 펼쳐든 채 색연필로 아무 생각 없이 그림 위에 덧칠하면서 현실을 잠시 잊는 열풍이 불고, 아동이나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수학 문제집이나 외국어 아동용 학습지를 이제는 성인이 구입, 주로 쉬운 문제들을 조금씩 풀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다. 성인이 아동을 흉내낸다고 하여 유치한 행위는 결코 아닙니다. 아동기로의 퇴행 현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각박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은 심경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작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열망, 즉 '소확행' 또한 이러한 현상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때문에 경제 볼륨 전체로 볼 때 고용 규모가 줄어드는 건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엿보입니다. 이러한 기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기에 어쩌면 현재의 청년 계층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구조적인 여건을 인력으로 개선시키는 데엔 엄연히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용 규모는 일정 크기에 불과한데 일자리를 찾는 사람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보니 치열한 경쟁 구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청년들 역시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바라는 건 그 좁은 일자리라도 좀 공정하게 경쟁이 이뤄지고 자신들의 꿈과 희망이 짓밟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 채용 비리 현장을 적발하면서 앞으로는 무관용 원칙을 앞세워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과연 기업들의 채용 관행이 얼마나 바뀌게 될는지는 우리 모두가 지켜봐야 할 노릇입니다. 청년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보장되고, 아울러 지극히 공정한 경쟁 과정을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이들의 어깨에 달려 있는 셈이니까요. 기울지 않은 운동장을 만들어주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