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가 딛고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새 날 2018. 2. 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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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지방 의회가 도심에서의 노숙을 막기 위해 벤치 위에 철제 팔걸이를 설치했다가 시민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의회 측은 그동안 벤치에 누워있는 몇몇 사람들(노숙자) 때문에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벤치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불만 사항이 접수되어 이에 대응코자 이와 같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를 잘 보면 알 수 있듯이 팔걸이의 형태가 너무 크고 흉측하기 짝이 없습니다. 단순히 노숙을 막기 위함이라기보다 시민과 노숙자를 완전히 격리시키고 싶은 평소의 바람이 반영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어느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건 무리수임이 틀림없습니다. 벤치와 조화를 이뤘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법한데 이건 지나치게 생뚱맞은 형태입니다. 정치인들이 평소 노숙자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시민들과 노숙인의 사이를 이렇듯 이질적인 형상으로 갈라놓고 싶은 의회의 의중이 벤치에 고스란히 반영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는 달리 영국 시민들은 상당히 현명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이 참다 못해 거리로 나섰고, 흉측한 형태의 벤치를 리본과 풍선 등으로 꾸미며 노숙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시민들은 "노숙자에게 등을 돌리는 의회"라는 비난 일색의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노숙을 막기 위한 해당 정책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인들은 어떨까요? 오늘도 민생보다는 정쟁에 매달리느라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오늘부터 국회 상임위원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얼마 전 국회 법사위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와 관련하여 외압 의혹이 제기된 권성동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집단 퇴장한 사안에 대한 항의 차원이라고 합니다. 


ⓒSBS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를 비롯, 소속 의원들이 평소 입만 열면 국민만 바라보며 정치를 하겠노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랬던 정당이 정작 산적한 민생 법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이를 나몰라라한 채 또 다시 정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특성화고교생들의 현장실습 계약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등 부당행위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개정안이나 일선 학교에서 커피 등 카페인 함유 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개정안 등 산적한 민생 관련 법안 87개의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며, 개헌안 마련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당초 2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 또한 전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일까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을 한 번 읊어 볼까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주로 해야 하는 일은 지금과 같은 명분 없는 싸움이 아닙니다. 바로 시민들을 위한 법안 마련에 몰두하고 이의 처리에 안간힘을 쏟아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영국 지방 의회의 경우 정치인들은 왜 시민들로부터 그토록 뭇매를 맞은 것일까요? 시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한다며 나름의 정책을 펼친 결과물인데도 말입니다. 서두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정책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정작 해결했어야 하는 건 단순히 벤치 위에 팔걸이 하나를 부착하는 일 따위가 아닙니다. 바로 노숙인들이 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그 원인을 찾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 게다가 노숙인을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라보기보다 시민들과 분리시켜야 하는 대상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기에 호된 꾸지람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인들이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하는 곳은 바로 시민들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시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라며 이들을 정치인으로 뽑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나요?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도 정작 시민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만 도래하면 되레 나몰라라 돌아서기 일쑤 아니었던가요? 정치가 딛고 서 있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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