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확행'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좇는 게 피곤하다고요?

새 날 2018. 1. 1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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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행복 때문에 몹시 피곤하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근 '소확행' 붐이 일고 있는데, 신년 벽두부터 가상화폐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누가 몇 억을 벌었다거나 누구 때문에 천만 원이 날아갔다는 등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무슨 사소한 행복 따위로 진짜 행복을 누리는 척 하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행복을 좇으면 좇을수록 더 불행해진다는 '행복 피로감'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으며, 심지어 행복에 매달리는 것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고까지 말한다. 조선일보가 오늘자로 보도한 기사 "행복하려 애쓰는 당신… 피곤하지 않나요?"의 논조다. 


행복이란 개인적인 감정과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지극히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생각이나 지향하는 바가 모두 틀리듯이 추구하는 행복관도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 사회다. 이곳에서는 성공의 기준이 한결 같다. 집단주의의 표본을 보는 듯 말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면서 쉼없이 내달린다. 그러다 보니 부나 사회적 지위 혹은 평판 따위가 행복의 기준으로 쉬이 둔갑하곤 한다. 



사교육의 힘을 빌려서라도 훌륭한 성적을 거둬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진학 후엔 다시금 피터지는 경쟁을 통해 안정적인 공직을 구하든지 그도 아니면 모두가 알 만한 규모의 회사 명함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바라고 이를 좇는다. 타인에게 떠벌리기 좋은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수십 평 대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에서 사는 꿈을 꾼다. 사람은 많고 그와는 반대로 땅덩어리는 좁아 그렇기도 하지만, 전국 곳곳엔 개성이라곤 일절 없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로 빼곡하다. 더구나 부를 향한 왜곡된 욕심이 이의 가격마저도 천정부지로 높여놓고 말았다.


우리에게 있어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일상이며, 그 속에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판단되면 우쭐해 하며 행복감을 느끼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좌절로부터 비롯된 불행 속으로 쉽게 빠져들곤 한다. SNS 등 온라인의 발달은 남들보다 그럴 듯하게 보이려는 경쟁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부추기기에 꼭 알맞다. 좋은 여행지에 다녀오고, 맛난 것을 먹고 있으며, 가족과 행복해 하는 모습을 경쟁적으로 올리기 바쁘다. 실제의 삶과 간극이 크게 벌어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다른 사람들 역시 오프라인에서의 삶과 온라인 속 삶은 완전히 딴판이기 때문이다. 


거짓 행복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남들보다 우월의식을 느끼면서 묘한 쾌감에 젖거나 혹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든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학하는 삶, 이런 게 과연 행복일까?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가상화폐로 인해 불행해지는 삶과 판박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느덧 진짜 행복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어졌다. 무한경쟁 구도에 치여 자신을 잊고 살던 젊은이들이 부모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의 아둥바둥 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삶 속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KBS


최근 개봉한 영화 "스타박'스 다방"은 요즘 청년들이 추구하는 삶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인 박성두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국내 최고 명문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다. 하지만 이는 부모님이 바라는 자식 상일 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건 고시 합격이 아닌 바로 커피를 만들고 이를 즐기는 일이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흥행보증수표, 즉 최고의 행복을 누릴 만한 스펙을 갖추고 있었으나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삼척으로 내려가 허름한 카페를 개업, 자신의 꿈을 좇으며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한다. 


눈만 뜨면 온통 자극적인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요즘 청년들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져 왔으며 어느덧 이에 질려버렸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존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노멀크러시'로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해당 용어에는 소박하고 작지만 평범한 존재를 추구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기성세대가 흔히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냥 '아무나'가 되어 평범하게 사는 삶도 훌륭한 삶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성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중 3명은 큰돈을 벌지 못해도 충분한 여가를 갖고 교우관계, 여행 및 레저, 취미 등을 즐기는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같은 기성세대 역시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이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아가면서도 섣불리 변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저 안주하는 삶에 만족했던 것에 비하면 직접 참여하면서 변화를 일궈나가는 요즘 청년들의 꿈틀거림은 기특하기 짝이 없다. 이와 더불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트렌드도 엿보인다. 올 한 해를 관통할 것으로 전망되는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서두에서 언급했던 '소확행'이 떠오른다. 이는 비록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일컫는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의 방식으로,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이 표현을 쓴 데서 유래됐다. 



일과 삶의 균형을 좇는 '워라밸', 그리고 가격보다는 만족도가 큰 제품을 찾는 '가심비'와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근래 각광을 받는 트렌드다. 가상화폐 광풍을 젊은이들의 행복과 연결지으며 사회 변혁에 목말라하는 청년 세대를 폄하하는 듯한 이상한 논거 때문에 굳이 기사 하나를 서두에서 끄집어냈다. 물론 해당 언론사가 왜 이런 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속내는 뻔하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소확행이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 연유는 바로 해당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행복을 부나 사회적 지위의 잣대로 평가하고 타인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며 행복 내지 불행을 좇고 있는 가짜 행복이 아닌, 말 그대로 일상에서 비록 소소하지만 작고 평범한 것으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소박한 열망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그러니까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많은 부를 거머쥐었다고 하여 행복하다 말할 수 없으며, 반대로 가상화폐 때문에 재산을 잃었다거나 아니면 참여하지 못한 사이 부를 늘리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불행한 것도 아닌, 기성세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빚을 법한 가짜 행복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함이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누리는 행복은 가짜다. 이 가짜 행복을 언급하면서 이 때문에 피곤하다는 말은 얼토당토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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