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트럼프의 막말이 불편한 이유

새 날 2018. 1.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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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미 정보기관에서 인질 정책 분석가로 일하는 한국계 여성에게 "예쁜 한국 숙녀가 왜 트럼프 정부를 위해 북한과 협상하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들은 미 NBC뉴스가 12일 '트럼프가 인종과 민족에 대한 발언으로 예법을 어긴 역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소개했다며 일제히 보도에 나섰다. 


트럼프가 이날 한 발언 가운데 어느 민족 출신인가에 따라 그의 경력이 결정돼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사실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그녀의 출신이 어디인가를 꼬치꼬치 캐물은 것도 그렇거니와 아울러 진로가 바로 그 출신 성분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 건 분명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우리에게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건 미국인들의 시각엔 영 관심 밖인 듯한 "예쁜 한국 숙녀"라는 표현에 있다. 



일단 조롱이 됐든 혐오가 됐든 아니면 칭송이 됐든, 성인 여성을 향해 외모를 대상으로 발언한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차별적인 표현에 해당하며 누군가에게는 자칫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이다. 더욱이 한국 숙녀이기에 예쁘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유독 민감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향해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하는 건 일종의 증오범죄의 범주에 속한다. 


차별과 혐오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다. 많은 혐오가 차별적 토대 위에서 잉태하고 있고, 혐오는 차별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의 언행은, 특히 미국이라는 국가는 상징성이 유달리 큰 까닭에, 그 파급 효과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면책특권에 기댄 듯 연일 막말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의 막돼먹은 행동은 그래서 더욱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여성을 예쁘다고 하는 건 우리를 향한 일종의 칭찬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논란으로 불거진 사실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의 여성 편력은 SNS상에 성범죄 사실을 밝히며 이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는 '미투 캠페인'을 통해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이 17명에 이를 정도로 남다르다. 그의 발언이 해당 여성에게만 국한된 표현이라고 해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거늘,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국 출신 여성이기에 '예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연합뉴스


즉, 이를 조금 더 확대해석해보면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인식을 밑바탕으로 하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뉘앙스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 여성을 상대로 말이다. 발언을 한 당사자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외국인이, 게다가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한국 여성은 예쁘다"라며 공개 석상에서 언급하고 나선 건 곱씹을수록 기분이 언짢다. 불과 몇 시간 전엔 중남미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을 향해 'shithole'이라 표현했던 트럼프이기에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이러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니까 트럼프가 해당 여성의 외모를 진정으로 미화하기 위해 그렇게 발언했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른바 외모 품평을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개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표현 속에는 차별적인 요소와 성희롱의 의미가 내포될 수 있으며, 루키즘을 야기하기까지 한다. 표현 당사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강한 처벌로 다루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막말 제조기로 불릴 만큼 연일 차별과 혐오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인물이다. 앞서도 살짝 언급했듯 최근 발언들은 더욱 심각하기 짝이 없다. 이민 개혁 해법을 논의하던 도중 아이티, 엘살바도르 등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우리가 왜 shithole 같은 나라들로부터 이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오도록 받아줘야 하느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의 'shithole'이란 매우 지저분한 곳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로, '똥통'이나 '똥구멍' '거지소굴' 등 매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유엔 인권 담당 기구는 트럼프의 이른바 '거지소굴' 발언을 인종차별적이고 파괴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아이티 정부는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하여 항의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가 작정하고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를 향해 내뱉은 막말 'shithole'은 워낙 저속한 표현인 까닭에 전 세계 언론들이 자신들의 국가 사정에 맞게 이를 순화하여 번역하느라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말과 극단적 주장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현상인 '트럼피즘'에 의해 탄생한 이 해괴한 작자가 자기 멋대로 내뱉는 막말로 인해 전 세계 언론인들까지 때아닌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 미국에서는 적어도 고용 영역에서 만큼은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임신 여부를 이유로 욕설이나 놀림, 차별적 발언 등을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모범적인 인권 국가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되레 입만 열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증오발언을 쏟아내며 전 세계인들을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와중이다. 우리라고 하여 예외일 수 없다. 


트럼프의 막말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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