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부쩍 늘었다. 사소한 일로 서로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분들이 예전에 내게 한없이 높다랬던 그 어르신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상대방의 말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쏟아붓기 바쁘다. 속사포가 따로 없다. 어머니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그러다 보니 늘 평행선을 달리기 일쑤다. 두 분의 관계가 갑자기 왜 이토록 악화되었는가를 곰곰이 헤아려 보았다.
사실 아버지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소득을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변한 것일까? 팔순이 가까워지다 보니 과거의 삶에 대한 보상 심리라도 작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어쩌면 두 분 모두 동시에 변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과 남성 공히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성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점차 반대 방향을 향해 수렴해가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탓이다. 그렇잖아도 어머니께서는 그동안 줄곧 순종적으로 살아오셨는데,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죽어도 못 살겠다고 말씀하신다.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결연한 모습이다.
특별히 일을 하지 않는 까닭에 근래 주로 집안에만 계시는 아버지는 안방의 TV를 끼고 사신다. 그러다 보니 한 가정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TV 리모컨도 늘 아버지의 손에 쥐어져있기 일쑤다. 청력이 눈에 띄게 나빠져 평소 TV의 볼륨을 크게 올려놓곤 하시는데, 어머니께는 일단 이러한 대목부터 눈엣가시다. 뿐만 아니다. 평소 배려를 잘 모르는 아버지의 완고한 성격 때문에 당신께서 보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됐다며 한탄을 늘어놓으신다.
오늘은 이른 시각부터 양말을 놓고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인데 대접을 안 해준다며 언성을 높였고, 어머니는 그깟 양말이 대수냐며 이번 대결에서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그맘때의 세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무척이나 가부장적인 분이시다. 누군가에게 베풀기보다는 주로 대접을 받는 입장으로 살아와 부엌에서 아내의 일을 거들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신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열심히 살아오셨다. 아버지 세대로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다. 최근 자주 빚어지곤 하는 부모님 사이의 갈등 인자는 이 사회가 점차 변화하고 있는 현실과 부모님이 함께하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는 지점에서 찾아봄직하다. 어머니는 그나마 이 변화에 조금은 민감하신 편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굽히고 순종적으로 살아온 과거의 삶이 억울하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다.
ⓒSBS
아버지에게 자꾸만 과거의 일을 언급하면서 변화를 요구하신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예전의 사고 방식에서 단 한 발자욱도 진전된 게 없기에 어머니의 행동이 의아하고 영 못마땅하게 다가올 뿐이다. 당신은 평상시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왜 자꾸만 곁에서 태클을 걸어오는 것인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는 눈치임이 역력하다. 하루는 어이가 없으셨던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 엄마 혹시 치매 걸린 거 아니니? 왜 자꾸만 옛날 얘기를 꺼내서 사람을 들들 볶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서 왜 그렇게 행동하고 계시는가를 정확치는 않더라도 어렴풋이 짐작한다.
지난 성탄절 즈음, 성당에서 있었던 판공성사 때 신부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덕분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으며, 두 분께서 상대방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정말로 모든 갈등이 해소됐는 줄 알았다. 실제로 두 분의 관계가 다시 원만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불과 며칠 만에 산산조각나고 만다. 오늘 아침 일을 겪으면서 두 분 사이에 형성된 갈등이 여전한 데다가 근본적인 해소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친구들과 비슷한 고민을 함께 얘기하다 보니 지금 우리 부모님께서 겪고 계시는 갈등은 웬만한 가정이라면 모두들 경험하고 있는 증상이었다. 대개 우리집처럼 어머니로부터 갈등이 촉발되는 경향이 크며, 사연들이 모두 대동소이한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문득 언젠가 언론 기사를 통해 접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50세가 되면서부터 생각이 날 때마다, 혹은 부모님의 행동으로부터, 늙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차근차근 기록, 60살이 되어 이를 책으로 출간하여 화제가 된 사람 이야기다. 노화가 될수록 기억력은 감퇴하고 인지능력은 더욱 떨어질 테니 그 때가 되기 전에 이러한 리스트를 미리 기록으로 남겨놓으려는 심산이었던 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조금 완고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류의 이들을 흔히 '꼰대'라 일컫는다. 적어도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나 역시 앞서 사례로 든 사람처럼 늙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기록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의 변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러한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가 늙어 인지능력이 퇴화하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이 기록이 '꼰대'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그래도 아주 조금은 예방해주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도 있다.
일단 첫 기록은 이랬다.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지 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특히 아내의 이야기는 더더욱 주의 깊게 듣자" 앞으로 어떠한 리스트들로 채워질 것인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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