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삶이란 이별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새 날 2017. 9. 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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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 굵고 짧았다. 특히 얼마 전 다량의 수증기를 품은 기단이 한반도를 관통한 이래 기후 변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8월임에도 옷장 속 깊숙이 모셔두었던 긴 팔 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년엔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무더웠던 이번 여름 역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가을에 넘겨주려는 낌새다. 


부쩍 선선해진 기후는 더위에 지치고 찌든 심신을 바짝 긴장시킨다. 한결 맑아진 정신으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니 우리집 반려견 미르가 생활하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미르와 영원히 이별을 고한 건 대략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녀석이 이곳을 떠나던 즈음과 비교해 보니 그다지 변한 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을 잃은 상실감과 그로 인한 상흔이 여전한 까닭에 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의식적으로 이를 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선한 바람이 피부에는 제법 차갑게 다가오던 날,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녀석의 공간을 둘러보기로 작정한다. 그나마 한 달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그날따라 현관 부근에서 녀석의 체취가 희미하게 풍겨온 것도 이유라면 이유이다. 반갑다며 내게 마구 뛰어오던 미르의 모습이 연상된다. 앞발을 든 채 벌떡 일어서며 장난을 걸어오는 모습도 떠오른다. 그 큰 덩치로 이쪽 저쪽을 쏘다니던 모습은 나의 얼굴에 절로 미소를 띠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이곳엔 녀석의 체취가 남아있지 않았다. 미르가 떠난 지 한 달가량이 지나니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이다. 



기온 변화에 상당히 민감했던 미르에게는 갑자기 찾아온 이 가을이 어느 누구보다 반가웠을 법한데, 결과적으로 이를 누릴 수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여름 내내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더위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활력을 찾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축 늘어져 있던 몸이 다시금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 활동적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미르가 태생적으로 유난히 더위에 취약한 견종이긴 하나, 그럼에도 이 시기만 잘 견디고 버텨주었더라면 곧 자신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급작스레 서늘해진 기후를 보니 미르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녀석과의 이별이 아직까지는 익숙치 않다. 아니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그동안 무수한 이별을 경험해왔다.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그러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껏 맺어온 인연 역시 시기만 다를 뿐, 아울러 이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종국엔 모두가 이별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눈을 뜨고 태어났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게 순리이듯 말이다. 



이별의 종류나 경중은 사람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어떤 이별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가오기도 하고, 또 다른 이별은 커다란 생채기를 만드는 등 굉장히 치명적인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별은 그 종류에 관계없이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데다가 이를 극복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미르와의 이별처럼 말이다. 어쩌면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별을 반복하고 이에 억지로 익숙해지기 위해 적응해나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무게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다양한 이별을 경험하면서 그에 적응하기 위해 마음에 근육을 단단히 새기고 이를 단련시키는 과정은 삶의 또 다른 양태라고 볼 수 있다. 미르와의 이별 또한 이와 비슷한 과정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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