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당신도 디지털 탈출을 꿈꾸는가?

새 날 2017. 9. 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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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난 2000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 출퇴근하던 내 손에는 PDA라는 조그만 기계가 쥐어져 있었다. 이 작은 녀석은 참으로 영리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출퇴근 시간을 충분히 재미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북이라 불리며 대중화 단계로 들어섰지만, 그의 프로토타입쯤 될 법한 이 녀석은 텍스트 파일로 변환시킨 책 한 권을 통째로 저장, 틈틈이 이를 읽게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십 권, 아니 수백 권의 도서 분량도 불과 수 메가 바이트의 파일로 저장이 가능했다. 간단한 종류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건 두 말하면 잔소리일 테다. 스타일러스 펜을 꺼내 액정 위로 쓱쓱 줄을 그어 무언가를 그리거나 기록해놓으면 이미지 파일로 저장이 되어 나중에 확인할 때 무척 요긴했다. 혹은 스타일러스 펜으로 적은 글자들을 텍스트로 인식, 파일로 변환하여 저장하는 일도 가능했다. 소소한 용량으로 각종 사전이 활용 가능했던 탓에 PDA는 전자사전 몰락의 단초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물론 이를 활용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전혀 없었다면 이는 거짓말일 테다. 휴대폰을 별도로 들고 다니는 일은 꽤나 불편했다. 두 기종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런 나의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현된다. PDA와 휴대폰이 결합한, 이른바 PDA폰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로소 온전한 손 안의 컴퓨팅이 실현된 느낌이었다. 이를 휴대하고 다니면 왠지 뿌듯했다.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던 이들의 마음이 아마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전후관계를 따지자면 PDA폰은 스마트폰의 아버지뻘쯤 된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스마트폰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냄에 있어 앞서의 시도들이 기술적인 토대와 영감으로 작용,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첫 등장한 아이폰이 이제 ‘아이폰X’(아이폰 10으로 읽는 게 맞겠지만, 아이폰 엑스로 불리기도 한다)라는 이름으로 거듭날 채비를 마쳤다.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으며,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고 있고, 세상과의 접촉면을 넓히며 소통의 기회를 크게 확장시키는 등 굉장히 혁신적인 제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인류가 창조해낸 이 혁신이 우리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살게 하기 보다는 자꾸만 기계에 의존케 하는 등 되레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이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폰 화면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걷는 이른바 '스몸비족'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울 만큼 일찌감치 대중화의 단계로 접어든 지 오래다. 우리 주변에는 휴대폰이 곁에 없을 경우 금단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 갈 때조차 휴대폰을 들고 간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전국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3%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61.4%는 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는 편이라고 답했으며,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손에 닿기 쉬운 곳에 두거나 손에 쥐고 잠을 잔다는 응답도 59.1%에 달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하고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는 까닭에 성인들조차 손에서 스마트폰을 쉽게 놓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기 더욱 어려운 연령층에게 있어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환경은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처음 출시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을 변혁시키고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반색했던 대중들이다. 실제로 세상의 모습은 스마트폰의 출시 이전과 그 이후로 극명하게 갈릴 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환호성을 내지르던 대중들은 어느덧 이로부터 멀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이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의 모습에 대중들은 이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과거에는 유례가 없던 '멍 때리기'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유료 서비스마저 등장할 정도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흡사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마냥 급격한 출렁임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때문일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 스마트폰 중독 방지 앱의 다운로드 수는 140만을 돌파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단다. 더 나아가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인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면 돈을 준다는 앱 역시 다운로드 수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의 이러한 극성스러움은 다분히 우습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로 본격 진입한 이래 눈만 뜨면 온통 자극적인 환경 속으로 내쳐지고 있는 우리는 어느덧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AI가 우리의 삶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건 그다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벌써부터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디지털과 그의 기기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 다시 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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