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아름다움은 젊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새 날 2017. 8. 20. 16:00
반응형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청춘으로부터 멀어져감과 동시에 늙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온 까닭에 안치환의 노래 '위하여'가 귀에 들어오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가슴 저리게 다가오기 시작한다면 이 또한 늙어가는 현상에 대해 본격 눈을 뜨게 됐음을 의미한다. 솔직히 실토하자면 내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노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뜬 이상 누구든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 노화 현상을 자연스러움이라기보다 꺼려하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크다. 심지어 노화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TV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온통 젊음 예찬 일색이니 말이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며 장수를 누리는 방송 가운데 하나인 가요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핵심 출연진들은 이미 10대 20대의 앳된 아이돌 그룹이 장악한 지 오래다. 대중 가요의 장르가 댄스곡이 전부가 분명 아닐진대, 아이돌의 인기와 더불어 언젠가부터 가요 시장 전체를 이들의 노래가 모두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젊음은 싱싱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반해 늙음은 추한 것으로 각인시킨다. 효능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와 궤를 함께하며 노화를 예방한다거나 안티 에이징 류의 상품이 그의 종류에 관계없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며 모두가 젊어지고 예뻐 보이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한다. 건강보다는 오히려 미용과 외모를 위한 요량으로 각종 운동이 선전되고 있으며, 온갖 종류의 다이어트 기법이 선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을 좇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이를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우리는 젊음과 청춘만을 예찬하며 날씬해지려고 기를 쓰거나 예뻐지기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에마저 쉽게 칼을 대곤 한다. 모두가 이를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지만, 실은 끔찍한 일임이 분명하다. 돈이 될 만한 대상은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으며 쉽게 주류로 떠오르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상은 세상의 관심 밖으로 점차 밀려난다. 문제는 가요 시장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며 어느덧 10대들이 주류로 떠오른 것처럼 그 손바뀜 현상의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래 먹방을 시청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먹방의 인기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온통 젊음과 예쁨을 찬양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 대리 만족으로 먹방 시청이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몸매를 관리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잠시 벗어나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BJ의 폭식 방송을 즐겨보게 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먹방의 인기 또한 현대인들의 뒤틀린 가치 추구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늙음은 결코 죄가 아니라며 노화 현상을 두둔하는 일각의 외침은 외려 청춘으로부터 멀어져간 이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 상업주의로 거칠게 물든 세상에서는 주류로부터 벗어난 이들에 대한 작은 배려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유명 여성잡지 얼루어(allure) 편집장이 앞으로 '안티에이징'이니 '노화방지' 같은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노화방지라는 표현은 '늙는 것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아름다움은 젊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예뻐 보인다'가 아니라 그냥 '그녀는 멋지다'라고 표현하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얼루어(allure)는 그동안 뷰티와 패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및 관련 시장을 선도해온 까닭에 그의 발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화 현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미용업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단다.



물론 '얼루어'가 제아무리 관련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 잡지사라고 해도 일개 회사의 편집장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 세상 전체가 쉽게 변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통 젊음만을 예찬하고 이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며 사회 분위기를 한 곳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특히 이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는 패션 및 뷰티업계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해주며,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오게 하는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기에 그의 선언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진홍 교수의 "늙음은 축복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엔 인식 못했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게 된다"는 표현처럼 그의 용감한(?) 결정이 아무쪼록 젊음 및 외모가 전부가 아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지게 하고, 그러한 현상에 대해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을 하루빨리 앞당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