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net의 걸그룹 인재육성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아이돌학교' 멤버로 활약 중이던 출연자가 중도 하차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연이 밝혀졌는데, 다름아닌 '거식증'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지난 해에는 아이돌그룹 '오마이걸' 멤버인 '진이'가 거식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 활동을 잠정 중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거식증은 최근 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공통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깡마른 체형, 조각 같은 외모, 그리고 꽉 짜여진 스케줄을 지향하는 그들에게 있어 엄격한 체중관리는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이 겪는 고통과 비슷한 현상을 일반인들 역시 일상에서 늘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대중 미디어 매체의 위력이 더해갈수록 유명 모델과 연예인의 마른 몸매가 미의 기준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상적인 몸매의 기준은 어느덧 미디어가 만들어낸 마른 연예인들의 몸매로 둔갑돼 있었습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자못 심각합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3만에서 4만 명에 이르는 프랑스인들이 거식증을 앓고 있으며, 모델의 다수가 이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KBS
우리나라 또한 그로부터 안전지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곳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07-2014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27.6%가량이 자신의 체중을 과대평가하며 지나치게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소가 4개 대륙 13개 나라의 평균 체형과 선호도 조사 등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2013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비만지수가 가장 마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상적인 체형을 묻는 선호도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남녀 모두 마른 체형에 80% 안팎의 절대적인 선호도를 보여 여타의 나라들과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정신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기와 맞물린 청소년 아이들은 자신들의 우상인 연예인을 닮아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씁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중고교 여학생 10명 중 4명이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있으며, 이중 20%가량이 단식, 설사약, 구토 등 적절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이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미디어의 영향 탓에 건강한 외모가 아닌 깡마른 체형이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으면서 각종 성형 기술도 덩달아 진보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성형공화국은 다름아닌 이러한 현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외모가 사회적 성공의 결정적인 열쇠로 받아들여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타고난 외양마저 가볍게 뜯어 고치기 일쑤입니다. 우리의 성형 기술은 세계 곳곳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련 시술과 수술을 받기 위해 해외 원정을 유발하기까지 합니다. 외모지상주의가 가장 정점에 달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인 셈입니다.
마른 몸매에 대한 집착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스스로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우울감을 느끼는 위험도가 약 1.82배 높다고 합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07∼2014년) 결과 역시 이와 비슷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여기는 여성의 삶의 질 점수는 스스로를 정상 체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보다 무려 76%나 낮았습니다. 무리하게 저체중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2017 미스 영국 대회 우승자가 정상 체형인 자신에게 살을 빼라는 주최 측의 조언에 반발하면서 왕관을 반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조이 스메일은 지난 6월 '미스 유나이티드 콘티넨츠' 대회 우승자로 선정돼 국제대회 참가를 준비 중이었는데, 대회 관계자로부터 몸집이 너무 크니 가능한 살을 많이 빼야한다는 조언을 듣고선 대회 참가를 아예 거부하고 미스 영국 왕관마저 반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녀는 "난 건강한 체형이다. 말도 안 되게 마른 것보다 훨씬 보기 좋다. 여성들에게 건강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좋은 선례가 되고 싶었기에 왕관과 대회 참가를 포기하고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미스 영국'으로서의 지위를 내려놓기란 비단 조이 스메일 그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어려운 결정일 줄로 압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이러한 그녀의 결정을 저는 존중합니다. 아울러 비뚤어진 세상의 시선에 맞선 그녀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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